곪아버린 조직문화부터 탈바꿈해야

[시사저널e=고명훈 기자] 삼성전자 최대 노동조합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이 지난달 파업에 돌입했다. 회사가 쏘아 올린 ‘성과급 0%’가 창사 이래 최초 파업 사태란 태풍이 돼서 돌아왔다. 노조의 총파업 선언 이후 경영진과 교섭이 다시 이뤄졌지만, 입장 차를 쉽게 좁히지 못하는 모양새다. 이달 1일 기준 노조 가입자는 3만6000명을 넘어섰다. 전체 임직원 수의 30%가량에 달한다.

외신과 해외 시장기관 등도 삼성전자의 파업 사태를 주목하고 있다. 반도체 시장이 기나긴 불황을 뚫고 이제 막 회복세로 돌아선 상황에서 생산역량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 파업을 바라보는 언론의 시각은 상반된다.  노조의 분노와 억울한 심정을 담아 이들을 대변하는 기사들도 있었지만, 일부 언론들은 직원들이 회사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며 내부 분란을 일으키는 노조를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같은 현장을 다녀온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온도차가 컸다.

당연히 노조가 언론을 대하는 태도도 언론사마다, 기자마다 달랐다. 경계하는 매체가 있는 반면, 다른 매체 기자에겐 허심탄회하게 하소연을 늘어놨다.

그동안 조용하던 노조가 왜 파업을 일으켰는지, 왜 이토록 많은 직원이 노조에 가입했는지, 그 근본적인 원인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성과급 0%가 트리거 역할을 한 것은 맞다. 그러나 그 안에서 곪을 대로 곪은 보수적 경영 문화가 젊은 청년 직원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도 돌이켜봐야 할 것이다.

삼성전자는 소위 말하는 우리나라 엘리트 인재들이 다니는 최고의 회사다. 지금도 대학생이 가장 일하고 싶은 기업 1위로 지목된다. 높은 연봉, 한국 최고의 회사에 다닌다는 자부심 등이 주된 이유다. 그런데 그 청년들이 삼성전자에 들어와 병을 앓고 있다.

삼성전자에서 십수년을 근무하다가 나간 한 직원을 만난 적이 있다. 도전 의식이 강하고 경력이 올라갈수록 오히려 더 잘하고자 하는 열정과 의지가 매우 큰 사람이었다. 그는 더 이상 삼성전자 안에서 재미를 느낄 수 없었다고 한다. 가만히 있어도 고액 연봉이 꼬박꼬박 들어오는데 굳이 일을 만들어서 키울 필요가 있냐는 게 대부분 경영진의 마인드였기 때문이다.

본인이 회사를 그만둘 때쯤 내부에서 오갔던 우스갯 소리가 있다고 한다. 과거 삼성전자가 정말 잘 나갈 땐 윗선에서 오히려 지금 위기니까 자만하지 말고 열심히 해야 한다고 엄포를 놨는데, 정말 위기가 닥쳐온 현 상황에선 우리 회사 잘 나가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키는 분위기였단 것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올림픽이 열린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유럽 주요 기업들의 경영진은 물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까지 만나며 ‘민간 외교관’ 역할을 자처했다. 이처럼 삼성이라는 그룹의 총수는 타이틀의 무게감이 매우 크다.

정작 노조에선 이 회장을 사실상 바지사장으로 치부한다. 오래된 경영진들이 이 회장을 전면에 내세우고 뒤에서 마음대로 조정하고 있단 주장이다. 모든 임직원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삼성을 만든 이병철 창업주와 이건희 선대 회장에 이은 3세 경영의 삼성그룹 총수를 이렇게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경영진에 대한 불신을 반영한다.

가화만사성이라고 했다. 세계 최고 기업이란 위상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 내부 통합이 우선돼야 한다. 내부 통합을 위해 시대에 맞는 경영과 조직문화로 완전히 탈바꿈해야 한다.

1993년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은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자”고 외치며 신경영을 선언했다. 지금 그보다 큰 위기에 처한 삼성전자에는 더 절실한 마음가짐과 태도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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