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여름 계속되는 노사갈등
삼성전자, 창립 55년 만에 첫 파업···조선 빅3도 위기
재계 “산업 대붕괴, 노란봉투법 본회의 통과 사력 다해 저지”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앞에서 이달 8일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이 총파업에 나선 모습. / 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앞에서 이달 8일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이 총파업에 나선 모습.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유호승 기자] 대한민국이 파업 공화국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 노동조합의 하투(夏鬪)가 주요 생산현장의 여름휴가가 끝나는 다음달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노조 및 조합원이 분쟁 과정에서 더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노란봉투법 개정안’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하면서 사측보다 근로자들의 목소리가 더욱 커질 것으로 확실시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정상적인 경영활동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며 각 노조와 국회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운 상태다.

각자의 이익을 챙기기 위한 노사 갈등은 매년 여름 불거져왔다. 단, 올해 특이한 점은 삼성전자가 노사 분쟁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 최대 노동조합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은 이달 8일 화성사업장 앞에서 총파업 결의대회를 열고, 조합원 6540명이 참여하는 총파업에 나섰다. 삼성전자 창립 55년 만의 최초 대규모 파업이다.

당시 사흘간 총파업에 돌입했고, 11일부터는 2차 무기한 총파업을 진행 중이다. 전삼노 조합원은 3만5000여명 수준으로 국내 삼성전자 직원의 약 27% 규모다.

양 측은 지난 29일 오후부터 임금교섭을 재개했다. 앞서 전삼노는 회사가 납득할만한 협상안을 제시하는 조건으로 이날부터 사흘간 끝장교섭에 돌입하기로 했다. 사측은 현실적으로 노조의 모든 요구를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이번 교섭 기간 최대한 이견을 줄이겠다는 입장이다.

전삼노 관계자는 “이번 교섭에서 회사와 합의점을 찾는다는 것이 조합의 기본 방침”이라며 “전삼노는 지난해 8월 대표 교섭권 노조 지위를 확보해 다음달 4일까지만 보장 받는다. 이 때까지 최대한 우리의 요구를 사측이 수용할 수 있도록 타협점을 찾을 것”이라고 전했다.

시장에선 삼성전자의 핵심 사업부문인 반도체 분야가 지난해 어려움을 겪은 후 올해 기지개를 켜는 상황에 파업으로 생산라인이 장기간 중단되는 등의 위기를 우려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현재까지 전삼노의 파업에 큰 생산차질이 빚어지지 않았지만, 기간이 길어지면서 생산라인이 일단 멈출 경우 정상화까지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해 빠른 시간 안에 간극을 좁히겠다는 목표다.

HD현대중공업 노사 관계자들이 올해 6월 4일 울산 본사에서 올해 임단협 상견례를 진행 중인 모습. / 사진=HD현대
HD현대중공업 노사 관계자들이 올해 6월 4일 울산 본사에서 올해 임단협 상견례를 진행 중인 모습. / 사진=HD현대

조선업계도 삼성전자와 비슷한 상황이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 조선 빅3는 회사 측과 올해 임금 및 단체협상(임단협)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파업 관련 찬반투표를 진행했다. 3사 모두 찬성 쪽으로 표가 모여 여름휴가가 끝나는 다음달 중순부터 본격적인 파업 움직임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대표적으로 현대중공업은 지난 29일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열린 쟁의조정 회의에서 조정 중지 결정을 받았다. 중앙노동위는 노사의 입장차가 큰 것을 확인하고 조정 중지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로 인해 노조는 휴가가 끝나는 다음달 8일 이후 중앙쟁의대책위원회를 열어 실제 파업 돌입 여부 등을 결정한다.

파업이 장기화된다면 선박 납기일을 준수하지 못해 지연배상금을 납부해야 한다. 또한 향후 일감확보 과정에서도 위기가 나타날 수 있다. 국내 조선업계가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는 분야는 기술 경쟁력은 물론 납기일 준수 능력이다.

노사 갈등 장기화로 파업 기간이 길어진다면 납기일을 지키기 어려워 전세계 선사로부터 신뢰를 잃을 수 있다. 10여년 만에 찾아온 ‘슈퍼 사이클’이 단기간에 끝날 수 있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나온다.

노란봉투법의 개정도 파업 공화국으로의 변화를 부추긴다. 노란봉투법이란 근로자의 민·형사상 면책 범위와 손해배상 청구 제한 한계를 높이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개정안’을 뜻한다.

쌍용자동차(現 KGM)와 경찰이 2013년 노조 측에 불법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서 47억원 배상 판결이 나자, 배상금에 보태 쓰라는 노란 봉투 보내기 운동이 벌어진 것에서 비롯됐다. 이때부터 노동계와 시민단체는 노조 쟁의권을 강화하는 법안을 포괄해 노란봉투법이라고 부른다.

환노위는 이달 중순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더불어민주당은 다음달 1일 국호 본회의에서 환노위를 거친 노란봉투법을 최종 통과시키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 6단체는 야당의 움직임에 여당인 국민의힘을 찾아가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아달라고 요청했다.

경제6단체는 “노란봉투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산업 현장이 공멸하거나 대붕괴하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며 “회사 측인 사용자의 범위를 무분별하게 확대해 하청 노조가 끊임없이 단체교섭을 요구하고 파업을 벌인다면 생태계가 붕괴하고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밝혔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노란봉투법이 경제 현장을 망가뜨리는 졸속 법안이라며 경제6단체와 함께 사력을 다해 본회의 통과를 저지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의석 부족으로 통과를 막지 못할 경우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까지 요청할 방침이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