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배터리, IRA 효과로 미국 시장 점유율 1위
트럼프 재집권 시 IRA 수혜 축소 전망···실적 악화 불가피
"경합주·공화당 우세주 IRA 이해관계 분석해 '협상카드'로 활용해야"

왼쪽부터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 현 미국 대통령. / 사진=연합뉴스.
왼쪽부터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 현 미국 대통령.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국내 배터리 산업이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효과로 미국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랐지만, 11월 치러지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할 경우 실적 악화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배터리 업계 버팀목 역할을 해온 보조금이 축소된다면 북미 생산시설 구축에 속도를 냈던 배터리 업체들의 실적이 쪼그라들 것이란 설명이다. 

실적 악화는 피할 수 없지만 IRA 법안 폐기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미국 내 전기차·배터리 생산시설이 공화당 우세 지역에 밀집돼 있어서다. 오히려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미국 내 7개 주에 대해서는 한국 기업의 투자가 해당 지역 경제에 미친 영향을 분석, 해당 데이터를 협상 테이블에 꺼내 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조 바이든 정부에서 첨단제조생산 세액공제(AMPC) 등을 약속받은 마당에 정부가 바뀌면서 보조금 정책이 뒤집힐 것을 염려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과 여론조사서 초박빙 승부를 펼치고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IRA를 폐지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어서다. 

미국은 IRA에 따라 현지에서 생산·판매하는 전기차 배터리 셀은 kWh당 35달러, 모듈은 kWh당 10달러를 주거나 세금을 줄여주고 있다. 한국 배터리 업체들은 IRA 발효 후 미국에 가장 많은 투자를 집행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많은 생산시설을 보유하고 가동에 나선 만큼 AMPC 효과로 매년 수천억원 이상 혜택을 받고 있다.

SK온의 미국 조지아 배터리 생산 거점. / 사진=SK
SK온의 미국 조지아 배터리 생산 거점. / 사진=SK

◇ 트럼프 재집권하면 K배터리 성장도 주춤···힘 실리는 '속도조절론'

IRA 효과로 국내 배터리업계는 미국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랐다는 평가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산업연구원은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한국 배터리 산업 리스크 분석: IRA 변화 전망과 국내 산업 영향을 중심으로’ 보고서를 냈다. 산업연은 “미국 시장에서의 한국 기업 강세는 무엇보다 IRA 영향이 크다”며 “IRA 전기차 구매 세액공제 중 배터리 요건이 한국 기업에 유리하게 결정되면서 미국 내 수요 확대와 판매량 증가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으로 IRA 지원 규모가 축소되고 전기차 보급 속도가 늦춰진다면 미래 이익을 기대하면서 단행한 국내 배터리 업체의 미국 내 투자 계획도 재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전망도 내놨다. 올해 배터리 3사의 시설투자액(CAPEX)은 역대 최대가 될 전망이지만, 내년부터는 ‘속도조절’에 나설 가능성도 존재한다는 얘기다. 

업계에 따르면 3사의 올해 시설투자액은 모두 합쳐 24조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LG에너지솔루션 11조원, 삼성SDI 6조원, SK온 7조5000억원 등이다. 시설투자액 합계도 2022년 13조8000억원, 2023년 22조2000억원으로 증가 추세다.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연구개발(R&D) 투자에 집중할 가능성도 있다. 업계 일각선 배터리 3사가 공장 증설에만 집중해 R&D 투자에 상대적으로 소홀했다는 우려를 제기한 바 있다. R&D 투자액 자체는 3사 모두 늘었지만, 매출액 대비 R&D 비중은 감소하면서다. 그간 투자 일변도로 증설 계획에 박차를 가했다면 IRA 축소를 계기로 사업 확장보다 내실을 다지는 시간을 보낼 것이란 관측이다.

‘IRA 폐기 및 축소’ 외에도 ‘대(對)중국 견제책’이 한국 기업에게 예상치 못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 대선을 5개월여 앞둔 상황에서 대선주자들의 대중 통상 공세가 강화하고 있다”면서 “대중국 강경 견제 기조가 한국 기업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특히 공화당이 대선에서 승리하고 상·하원을 모두 장악할 경우 대중국 견제 속도가 빨라질 것이란 설명이다.

문제는 중국산 원료나 중간재를 사용하는 국내 배터리업계에도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의 미국 시장 진입 장벽이 높아질 경우, 그 외 시장서 한중간 경쟁이 심화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미국 테네시주 스프링힐에서 가동중인 LG에너지솔루션과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배터리 합작법인인 얼티엄셀즈의 제2공장. / 사진=연합뉴스
미국 테네시주 스프링힐에서 가동중인 LG에너지솔루션과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배터리 합작법인인 얼티엄셀즈의 제2공장. / 사진=연합뉴스

“배터리 생산시설, 공화당 우세 지역 몰려···IRA 폐기 어려울 것”

다만 일부 전문가들은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이 올해 11월 대선에서 당선돼도 평소 발언과 달리 전기차 배터리 관련 재정 지원을 축소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는다. 국내 배터리 3사의 미국 생산시설이 공화당 우세 지역인 인디애나·캔터키·테네시 등에 위치해 이들 지역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분석이다.

미국 백악관 등에 따르면 미국은 IRA를 통해 17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1년간 1100억달러 이상의 민간 부문 투자를 유도하며 지역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됐다. 이 같은 효과 등을 따져보면 IRA를 폐기 혹은 축소하는 결정이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서도 쉽지 않을 것이란 주장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IRA 발효에 따른 일자리 창출 효과, 지역 경제 영향 등을 따져보면 공화당 지지율이 높은 주 위주로 혜택이 돌아갔다”면서 “무작정 IRA를 폐지하거나 혜택을 축소하는 건 트럼프에게도 리스크로 다가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화당 지지율이 높은 해당 지역에 IRA이 가져온 경제적 효과 등을 면밀히 분석해 향후 협상에 활용하는 방안도 있다”며 “IRA 지원 규모 축소 대상이 중국 업체로 향할 수 있도록 정부와 민간이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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