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공급사로 밀려난 HBM 사업···신제품 수율 향상 주력
마하1 개발 속도 조절···제품 완성도 제고에 집중
[시사저널e=고명훈 기자]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가 전영현 부회장을 새 수장으로 맞이하며 그간 회사가 추진해온 인공지능(AI) 반도체 사업전략을 대폭 수정할 전망이다.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비롯해 올해 추론용 칩 ‘마하1(MACH-1)’ 등 개발 방향 선회에 나설 것이란 예상이다.
28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전영현 신임 DS(반도체사업) 부문장이 풀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는 HBM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022년 HBM 시장이 본격 개화한 이후 2년 동안 경쟁사인 SK하이닉스에 밀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2022년은 경계현 사장이 DS부문장으로 부임한 해이기도 하다.
◇HBM 1차 벤더 도약 목표···수율 확보 관건
HBM은 AI 급부상과 함께 SK하이닉스가 2022년 6월 엔비디아에 처음 공급했다. 삼성전자도 과거 HPC향 2세대 HBM을 개발해 상용화한 이력이 있지만, 시장이 쉽게 열리지 않아 프로젝트를 잠정 중단한 바 있다. SK하이닉스가 2022년 HBM3(4세대) 양산을 시작하는 동안, 삼성전자는 이듬해인 2023년이 돼서야 같은 제품의 시제품을 출하하는 데 그쳤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2023년 글로벌 HBM 시장에서 53% 점유율로 1위를, 삼성전자는 35%를 차지한 것으로 추산된다. 올 1분기는 격차가 더욱 벌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김선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의 1분기 HBM 시장 점유율은 59%를 달성한 것으로 보이며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37% 수준으로 예상한다”고 분석했다.
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에 최신 HBM을 선제적으로 납품하고, 부족한 물량을 삼성전자가 공급하는 형태가 반복되고 있다. 삼성전자가 제품 단가 측면에서 SK하이닉스에 비해 수익률이 저조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경 사장은 지난달 사내 경영 현황 설명회에서 직원들에게 “AI 초기 시장에서 승리하지 못했다. 2라운드에선 승리해야 한다”라며 HBM 초기 경쟁에서 SK하이닉스에 패배한 사실을 직접 인정하기도 했다.
전 부회장의 신임 DS부문장 위촉 공시가 나온 지 사흘 만에, 삼성전자가 엔비디아로부터 HBM3E(5세대) 칩에 대한 성능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단 신 보도가 나왔다. 삼성전자는 즉각 반박 입장문을 발표했지만, 성능 저조에 대한 논란은 일파만파로 커지는 상황이다.
향후 HBM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선 신제품에 대한 수율 확보가 최대 관건이다.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HBM3 기준 SK하이닉스의 칩 수율은 70%대 수준인 반면, 삼성전자는 여전히 20%대에 머무는 것으로 전해진다. SK하이닉스는 최근 HBM3E에서도 이전 세대 수준의 수율을 달성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다만 현재 시장에서 HBM 물량 부족 현상이 지속되는 상황이며, 삼성전자도 올해 납품 예정인 HBM 물량에 대해 이미 공급 협의를 완료했다고 밝힌 바 있다. 올 2분기 중 HBM3E 8단 제품을 조기 양산하고, 12단 제품 양산도 전개할 계획이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전 부문장은 전자공학을 전공한 메모리 엔지니어 출신으로 보수적 성향의 기존 DS부문장과 달리 신기술의 선제적 개발과 기술 경쟁력을 최우선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향후 HBM 중심의 메모리 신제품 개발과 수율 향상에 중점을 둘 것”이라고 분석했다.
◇ 추론용 칩 ‘마하1’ 속도 조절
HBM이 기존 경 사장 체제에서 경쟁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던 분야라면, ‘마하1’은 경 사장이 임기 안에 성과를 내기 위해 강하게 밀어붙였던 제품이다.
마하1은 학습보다는 추론 영역에 방점을 두고 개발한 AI 반도체 칩으로, 엔비디아의 GPU 사용을 줄이겠단 목표로 글로벌 AI 기업들에 제시한 솔루션이다. 삼성전자는 마하1이 메모리와 그래픽처리장치(GPU) 사이에 데이터 병목현상을 8분의 1로 줄여, 전력 효율을 8배 높인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아직 실물은 공개되지 않았다. 마하1은 현재 삼성전자가 새롭게 설립한 ‘AGI(범용인공지능) 컴퓨팅랩’ 한국조직에서 개발을 전담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해당 제품은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경 사장이 주주와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면서 처음 언급된 바 있다. 경 사장은 개발담당조직에 마하1의 칩 설계 최종 검증까지의 단기간 내 마칠 것을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연내 마하1 개발을 마치고, 2세대 제품까지 만든단 구상인데, 사실상 칩 평가를 올 8, 9월에 끝내라는 것”이라며 “급하게 진행되다 보니 그 칩이 제대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지는 내부에서도 사실 담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 부회장의 DS부문장 부임 이후 마하1 개발에 일부 속도 조절이 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제품 개발도 중요하지만 HBM, 파운드리 등 기존 사업의 경쟁력 확보가 우선돼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경 사장은 지난 27일 개인 SNS 계정을 통해 “전영현 부회장은 반도체, 메모리, 배터리 사업에 대한 풍부한 경험과 전문성으로 AI와 같이 급변하는 기술 시대에 우리의 경쟁력을 강화할 것”이라며, “DS부문을 새로운 혁신의 시대로 이끌어나갈 전 부회장을 환영해주길 바란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