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행정부, 비축 휘발유 100만배럴 방출
올 11월 대선 앞두고 물가안정 통해 민심 확보
원유 정제→판매 한 달 소요···공급과잉 시기에 대량 구입

SK이노베이션 울산 생산 현장. / 사진=SK
SK이노베이션 울산 생산 현장. / 사진=SK

[시사저널e=유호승 기자]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연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민의 표심을 잡기 위해 원유 대량 공급에 나선다. 현지 휘발유 유통량을 늘려 소비자의 유류비를 낮춰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국제유가가 추가 하락할 조짐이 나타나면서 국내 정유업계는 긍정적 래깅(생산 및 판매 시차에 따른 이익) 효과를 노리고 중동 등에서 원유를 사전에 확보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는 21일(현지시간) 북동부휘발유공급저장소(NGSR)에서 비축 휘발유 100만배럴을 방출한다고 발표했다.

에너지부는 “여름 휴가 시즌을 맞아 가정의 기름값 부담을 낮추기 위해 휘발유 방출을 결정했다”며 “현충일인 메모리얼데이(5월27일)와 독립기념일(7월4일) 사이에 전략적으로 비축유를 방출해 충분한 공급을 보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인은 메모리얼데이와 독립기념일에 휴가를 가장 많이 떠나는 특징이 있다. 이에 맞춰 100만배럴의 휘발유를 주요 지역에 선제적으로 공급해 유통 가격 안정화에 집중하는 것이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지난 19일 헬기 추락 사고로 사망한 데 이어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이 폐 감염 등으로 중동 정세가 어느 때보다 불안한 상황에서 미국 정부는 유가 잡기에 나섰다. 휘발유 공급량이 크게 늘어나면 중동 원유 수입량이 줄어든다. 글로벌 원유 수요가 줄어들면서 국제유가 역시 하락할 것으로 점쳐진다.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일각에선 미국인들의 기름값과 관련된 불안한 심리를 노리고 바이든 행정부가 표심을 잡기 위해 휘발유를 대거 방출한 것으로 본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휘발유 가격이 2~3개월 이상 1갤런(3.8L)당 4달러를 넘어선다면 올해 11월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바이든 행정부가 유류 등 물가안정에 실패했다는 여론이 형성될 수 있어서다.

이로 인해 무디스 예측에 대항해 바이든 행정부가 표심을 모으기 위해 유가 안정화에 집중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미국의 움직임에 국제유가는 하락세다. 전략 비축유 방출 소식에 뉴욕상업거래소에서 21일 거래 중인 6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일 대비 0.54달러(0.68%) 하락한 배럴당 78.66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WTI 등 국제유가는 올해 4월 중동에서 전쟁 확대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에 86.91달러까지 오르기도 했다.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등으로 확전될 수 있다는 예상에 100달러를 넘어설 것이란 섣부른 예측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 완화 등으로 유가는 크게 요동치지 않았고, 오히려 미국의 움직임에 하락세를 보이는 중이다.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 GS칼텍스, HD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업계는 유가의 추가 내림세가 감지되는 만큼 이 시기에 원유를 대량 구입·비축하겠다는 계획이다.

원유 구매 시점보다 제품 판매 시기에 유가가 오르면 원재료 투입 시차로 수익성이 크게 증가할 수 있어서다. 정유사가 원유를 수입·정제해 제품으로 판매하기까지는 일반적으로 한달 가량의 시차가 발생한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국제유가가 미국의 수요감소에 지속 하락할 것으로 예측되면서, 시장에 공급과잉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며 “유가하락 시기에 원유를 대량으로 확보해 수익성 향상을 꾀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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