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년까지 연구개발비 1조 5000억원 지출 계획
연구개발비, 올해 3분기 누적 1103억원···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용도 감소
차입금 상환 등으로 현금 및 현금성 자산 급감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앞으로 10년 동안 4조5000억원의 연구개발비를 쏟아 2050년까지 매출 40조원을 달성하겠다”
강구영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사장이 올해 3월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투자 계획이다. 강 사장은 “당장 올해부터 연구개발(R&D)에 3000억원 이상 투자하겠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오는 2027년까지 매년 3000억원, 2028년~2032년까지 매년 6000억원을 연구개발비로 쓴다. 2033년부터는 매출액의 5~10%를 매년 투여하겠다는 방침이다.
강 사장의 공언은 당장 올해부터 지켜지지 않을 공산이 크다. 2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3분기 KAI의 올해 누적 연구개발비용은 개발비와 연구개발비를 합쳐 1103억원에 그쳤다. 지난해 3분기 누적 금액(1445억원)과 비교해도 23.6% 낮은 수치다.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용 비중은 2년 새 절반 수준으로 폭락했다. KAI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용은 2021년 8.2%에서 2022년 7.46%, 올해 3분기 기준 4.8%로 떨어졌다.
강 사장이 약속을 지키려면 KAI는 남은 4분기에만 2000억원에 가까운 금액을 연구개발비용으로 쏟아부어야 한다. 이는 지난 2021년, 2022년 전체 연구개발비용과 맞먹는다. 다만 KAI 관계자는 “5년간 1조5000억원을 연구개발비로 투자한다는 장기 플랜에는 변화가 없다”고 했다.
올해 3분기 수익성은 좋아졌으나 기업의 현금 곳간은 오히려 쪼그라든 영향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KAI는 2023년 3분기 연결기준 매출 1조71억원, 영업이익 654억원을 거둬들였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65.4%, 영업이익은 114.6% 늘었다. 다만 지난해 말 2조원가량이었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3분기 말 8838억원으로 크게 줄었다.
강 사장은 당초 대내외 악재로 미래사업에 대한 투자가 늦어졌다고 고백하면서 “돈을 빌려서라도 R&D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강 사장의 포부와는 달리 KAI는 벌어들인 현금 상당액을 차입금 상환에 썼다. 앞서 5월과 11월 각각 만기가 돌아온 2000억원·3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도 리파이낸싱(차환) 없이 상환했다.
다만 차입금 상환을 통해 재무건전성 확보에 나선 만큼 향후 투자를 위한 재정 여력을 확보했다는 측면에선 긍정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KAI의 3분기 말 부채비율은 376%로 직전 분기(423%)보다 47%p 감소했다. KAI 관계자는 “고금리가 지속하는 상황에서 풍부한 현금 자산을 활용해 재무건전성 강화에 나선 것”이라며 “여기에 협력업체 물품대금 등 모든 대금이 6~7월 시기에 가장 많이 지급돼 현금 지출이 커진 영향도 있다”고 했다.
지난해 FA-50 폴란드 계약을 시작으로 올해 말레이시아 수출까지 이뤄낸 KAI가 향후 수출 경쟁력을 이어나가려면 연구개발 분야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KAI는 지난 2017년 수천억원대의 분식회계 의혹으로 곤혹을 치르며 연구개발 등 미래사업 준비에 소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듬해엔 미국 차기 고등훈련기(APT) 사업 수주에 실패하고 코로나19로 위기를 맞았다. KAI가 ‘침체기’를 겪는 동안 글로벌 경쟁사들과 기술 격차는 4~5년가량 벌어졌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KAI가 추진 중인 6대 차세대 주력 사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선 막대한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KAI는 미래 먹거리로 ▲차세대 무기체계, ▲대형 수송기, ▲차세대 고기동 헬기, ▲UAM(민·군 겸용 AAV), ▲뉴스페이스(독자 위성개발·서비스), ▲우주 탐사·활용 솔루션 등을 추진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방산 분야를 비롯해 우주산업은 대규모 투자가 선행돼야 제품을 판매하고 다시 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면서 “10~20년 이상 장기간 투자를 하기 위한 자금 확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추가 매출처 확보를 통한 연구개발 자금 마련은 숙제다. 당장 수출이 기대되는 시장은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시장이다. UAE는 KAI의 중형 기동헬기 수리온 수출형인 KUH-1E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KAI는 현재 이집트에서 국산 전투기 마케팅을 집중하고 있다. 500대 규모의 미국 훈련기 시장 진출도 준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