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년比 3분기 매출 4.4% 하락, 영업익 32.8% 감소···‘헌터라제’ 수출 공백 등 원인
면역글로불린 제제 알리글로 FDA 허가 여부 내년 1월 확정···녹십자 “우리도 기다려”
‘헌터라제 ICV’는 러시아서 허가 신청···재조합 단백질 탄저백신 ‘GC1109’도 허가 대기
[시사저널e=이상구 의약전문기자] 예상대로 수익성이 일부 하락한 GC녹십자의 3분기 실적이 공개됐다. 올해 예상치 못한 악재 영향을 받았던 GC녹십자는 2024년 초부터 ‘알리글로’ 등 일부 품목에서 성과를 올릴 가능성이 예고돼 향후 추이가 주목된다.
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GC녹십자는 전날 올 3분기 잠정 경영실적을 공시했다. 공시에 따르면 연결재무제표 기준 매출액 4394억원과 영업이익 328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각각 4.4%, 32.8% 감소한 실적이다. 녹십자는 직전 분기인 올 2분기에 비해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1.5%와 38.4% 증가한 점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제약업계 관계자 A씨는 “GC녹십자의 경우 공시 전 증권가를 중심으로 실적 부진이 예고됐고 전년동기와 비교하는 것이 괸행이므로 하락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며 “다른 상위권 제약사들이 성장한 데 비해 상대적으로 녹십자만 하락한 것이 두드러지게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우선 GC녹십자 매출 하락은 ‘헌터라제’ 수출 부진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 2012년 허가 받은 헌터라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개발된 헌터증후군 치료제다. 헌터증후군은 남아 10만~15만명 중 1명 비율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진 희귀질환인데 국내 환자 수는 100명 미만이다. 이에 헌터라제 해외 수출 물량이 국내 매출의 3-4배에 달하는 규모로 알려졌다.
하지만 올해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와 중동 지역 분쟁 등 지정학적 이슈로 인해 헌터라제 매출에 일시적 공백이 발생했다는 것이 회사측 입장이다. 수출을 포함한 헌터라제 매출은 2020년 450억원, 2021년 530억원에 이어 지난해 700억원대를 기록했지만 올해는 일정 폭 하락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반면 GC녹십자는 인플루엔자(독감) 백신 해외 수출이 지난해에 비해 성장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영업이익의 경우 회사측은 명확한 원인 설명을 유보했다. 이에 역시 헌터라제 수출 공백을 영업이익 하락과 연결시킨 분석도 제기된다. 제약업계 관계자 B씨는 “GC녹십자가 개발한 헌터라제 매출원가율은 20% 가량으로 추산되는데 고매출 품목이기 때문에 회사 영업이익에도 일정 영향을 주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즉 자사가 개발, 원가율이 낮은 품목 매출이 하락하며 영업이익에도 여파가 전달돼 감소됐다는 의미다.
역시 GC녹십자는 마진이 높은 독감백신 수출 호조로 2분기 대비 영업이익이 성장했다고 역설했다. 특히 GC녹십자 영업이익은 매년 4분기 직원들에 대한 성과급 지급으로 인해 부진했던 관행을 감안하면 올해 전체적으로 수익성 부진을 피하기 힘든 상황으로 분석된다. 지난 2020년 4분기에는 녹십자 영업이익이 222억원 적자를 기록한 사례도 있었다.
하지만 2024년이 시작되면 GC녹십자가 그동안 추진했던 일부 과제에 대한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어서 호재 발생도 예상되는 상황이다. 우선 내년 1월에는 GC녹십자가 개발한 알리글로(국내 제품명: 아이비글로불린에스엔주 10%)에 대한 미국 FDA(식품의약국) 허가 여부가 최종 결정될 전망이다. 녹십자는 지난 4월 FDA로부터 생산시설 현장실사를 받은 데 이어 7월 BLA(허가신청서)를 제출한 바 있다. GC녹십자 관계자는 “(알리글로 허가와 관련된) 변동사항은 없으며 회사도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며 “내년 1월까지는 FDA로부터 결과를 받아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사람 혈액 내 액체성분인 혈장에서 특정 단백질을 분리해 만든 면역글로불린 제제 알리글로가 만약 FDA 허가를 받게 되면 행정 절차를 거쳐 내년 하반기 미국 시장에 진입할 전망이다. 미국 면역글로불린 시장은 지난해 기준 96억 달러 규모로 추산돼 진입이 확정될 경우 녹십자 매출에 직접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증권가를 중심으로 알리글로 허가 가능성을 점치지만 허가를 확신할 수 없다는 평가도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 C씨는 “FDA 업무를 해보니 심사기간 종료일에 정확히 맞춰 결정해 통보하며 미리 결과를 알아보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라며 “GC녹십자가 사실상 8년에 걸쳐 도전한 결과가 중요하며 파장이 작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녹십자가 지난 9월 러시아 연방 보건부에 품목허가를 신청한 ‘헌터라제 ICV’도 내년 성과가 예상되는 품목 중 하나다. 머리에 디바이스를 삽입, 약물을 뇌실에 직접 투여하는 신규 제형인 헌터라제 ICV는 녹십자가 임상 1/2상 시험 결과를 근거로 허가를 추진하고 있다. 만약 허가를 받고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가 가라앉으면 기존 품목을 대체한 헌터라제 ICV가 실적을 올릴 가능성이 예고된다.
GC녹십자가 질병관리청과 공동 개발한 후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허가를 신청한 탄저백신 ‘GC1109’도 주목 받고 있다. GC1109는 LF(치사인자), EF(부종인자) 등 2종류 독소 성분을 세포 내로 전달해주는 방어항원 단백질을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이용해 만든 백신이다. 향후 허가를 받으면 세계 최초로 개발에 성공한 재조합 단백질 탄저백신이라는 것이 회사측 설명이다. 제약업계 관계자 D씨는 “최근 경향을 보면 GMP(의약품 제조·품질관리기준) 실사에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돼 허가 여부 결정에 1년여 시간이 걸린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에 내년 후반기에는 GC1109 허가 획득 여부가 확정될 전망이다.
결국 올해 지정학적 이슈로 인한 실적 부진을 겪었던 GC녹십자는 현재로선 연말까지 특별한 호재가 예상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내년 초부터 그동안 준비했던 알리글로 등 허가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어서 하반기부터는 실적에 직접 반영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알리글로가 미국에서 허가를 받을 경우 실적은 물론 GC녹십자의 국제적 신뢰도 제고에 도움이 될 전망이다.
제약업계 관계자 E씨는 “일각에서는 알리글로의 미국 시장 진출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처럼 표현하지만 확정된 것은 없다”면서도 “수차례 도전하는 등 누적된 경험으로 허가 가능성은 높으며 GC녹십자가 차분하게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약업계 관계자 F씨는 “실적 부진에 따른 GC녹십자 일각의 예민한 분위기가 느껴진다”며 “내년 1월 알리글로가 허가 받으면 이같은 상황을 상쇄할 수 있으니 여유를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