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기조에 대규모 자금 조달 고민거리···다양한 조달 방안 마련 나서
SK온 다양한 재원 마련 통해 22조원 쌓아···LG엔솔·에코프로 등 회사채 발행으로 자금 조달
자금조달 부담 완화 위해 합작회사(JV) 방식 지속될 듯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시장은 보이는데 (자금) 조달 방법이 마땅치 않다.”
이방수 LG에너지솔루션 사장은 지난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대규모 투자가 이어진 데 따른 자금조달 우려를 나타내며 이같이 말했다. 고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국내 배터리 업계 1위 업체인 LG에너지솔루션마저도 자금조달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 사장은 세미나가 끝난 뒤 향후 자금조달 계획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아직 결정된 게 없다”고 답했다.
국내 배터리 업계는 높은 금융비용을 고려해 자금조달 전략을 다변화하고 모양새다. 해외 업체들이 조 단위 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 생산설비 확충·연구개발(R&D) 투자 확대를 위한 각 회사의 조달 역량이 중요해질 전망이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LG에너지솔루션은 1조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에 성공했다. 당초 5000억원 규모 발행을 계획했지만, 수요예측에 5조원 가까운 매수 주문이 몰리면서 발행 규모를 2배 늘렸다. 투자자들은 이차전지 산업 성장성에 대한 높은 평가를 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향후 설비투자를 위해선 더욱 많은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LG에너지솔루션이 회사채 모집에 나선 것도 올해 초 기업공개(IPO)를 통해 확보한 약 10조원의 자금이 대규모 설비투자에 따라 빠르게 소진된 것으로 풀이된다.
예상 투자 규모도 늘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생산 설비투자 목표를 지난해 지출한 6조3000억원보다 50% 이상 높이겠단 계획이다. 10조원에 육박하는 설비투자를 위해선 추가 자금 마련이 필수적이다.
다만 국내 배터리업체들은 영업 활동으로 벌어들인 수익만으로는 생산 능력 확대를 위한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대부분 배터리업체가 지난해부터 의미 있는 흑자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배터리 3사 중 하나인 SK온은 올해 2분기에도 7분기 연속 적자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설비투자 외에도 R&D, 공급망 강화 등 투자할 곳이 많아 차입 규모가 더욱 커질 전망이다. 배터리 3사가 올해 1분기 집행한 설비투자 금액은 4조5724억원으로 지난해 1분기(1조6471억원)보다 2.7배가량 증가했다.
문제는 향후 고금리 기조로 금리 부담이 심화하면서 투자 자금 마련의 부담이 커질 것이란 점이다. 이에 배터리업체들은 자금조달 전략 다변화에 나섰다. 금리가 저렴한 회사채 시장을 찾거나 증자로 자금을 조달하는 모양새다.
자금조달에 강점을 보이는 대표적인 배터리업체는 SK온이다. SK온은 22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 유치에 잇달아 성공하면서 뛰어난 자금조달 역량을 보였다. 재원 확보 방안도 차입과 유상증자, 정책 지원 자금 등으로 다각화했다. 현재 추진 중인 상당수 프로젝트의 재원을 확보했다는 게 SK온 측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SK온의 경우 LG에너지솔루션과 달리 향후 IPO를 통한 대규모 자금 마련 ‘카드’도 갖고 있다”며 “4년 안에 IPO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올해부터 흑자 전환이 예상돼 일정이 앞당겨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배터리 소재업계도 투자금 마련에 분주하다. 배터리 필수 소재인 양극재를 생산하는 LG화학은 교환사채 발행을 통해 20억달러(약 2조6000억원) 규모의 투자금을 확보했다. 교환사채는 회사채의 일종으로 1~2% 내외의 저금리 조달이 가능하다. 양극재 업체 에코프로도 오는 25일 발행을 목표로 약 1000억 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할 예정이다.
한편, 투자 부담을 줄이기 위한 완성차 업체와의 합작회사(JV) 형태의 공장 건설 방식도 앞으로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해외 정책 자금조달 과정에서도 글로벌 완성차 업체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스텔란티스의 합작법인이 캐나다 정부로부터 15조원 보조금을 받았는데 이 과정에서 스텔란티스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에 가장 중요한 건 배터리의 안정적인 공급”이라며 “완성차 업체는 유기적인 벨류체인 구성을 위해 보조금과 정책 자금조달 과정에서 배터리업체에 직·간접적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