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재고 증가세에 D램·낸드플래시 수요 회복 더뎌
메모리 가격 하락 지속···“올해 적자 규모 더 커질 가능성”
[시사저널e=이호길 기자] SK하이닉스 1분기 적자폭이 반도체 재고 급증에 따른 완제품업체들의 주문 축소와 메모리 가격 하락 여파에 따라 전 분기보다 커질 전망이다. 증권업계는 지난 1월 이후 실적 전망치를 매달 하향 조정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분기에 1조8984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해 10년 만에 적자 전환한 데 이어 1분기 적자 규모가 4조원을 넘어설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27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1분기 영업손실 전망치는 3조4864억원이다. 지난 1월과 2월 적자 추정치는 각각 1조9189억원과 2조7022억원이었지만, 매달 늘어나는 추세다. 최근에는 영업손실 규모가 4조2000억원(대신증권·이베스트투자증권), 4조3000억원(미래에셋증권) 등 4조원을 상회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이는 반도체 업황 때문이다. 소비 부진으로 PC와 모바일업계 반도체 재고로 팔리지 않는 반도체가 쌓였다. SK하이닉스의 1분기 D램과 낸드플래시 재고는 각각 20주 안팎으로 평가된다. 통상 재고 수준(5~6주)보다 약 4배 많은 수치다. 지난해 4분기에 6000억~7000억원 규모의 재고평가손실이 발생한 데 이어 1분기에도 최대 1조원 규모의 손실이 예상된다.
서버의 경우 북미 주요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사(CSP)들이 경기침체 여파에 출하량을 줄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올해 글로벌 서버 물량 증가율 전망치를 지난달 3.7%에서 1.87%로 낮춰잡은 데 이어 이달 초에는 1.31%로 다시 하향 조정했다. 서버 투자가 미뤄지면서 서버용 D램 시장도 약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메모리 반도체 가격 하락 폭도 가파르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 범용제품인 DDR4 8Gb(기가비트)의 지난달 고정거래가격은 1.81달러(약 2350원)로 2021년 7월 고점(4.1달러·5330원) 대비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낸드 범용제품인 멀티플레벨셀(MLC) 128Gb 고정거래가격은 4.81달러(6260원)에서 4.14달러(5390원)로 10% 이상 하락했다.
남대종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고객사들의 재고 조정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비수기 영향이 겹쳐 SK하이닉스의 1분기 D램과 낸드 비트그로스(비트 단위 성장률)는 전 분기 대비 각각 22%와 15% 하락을 예상한다. 평균판매가격(ASP)도 D램이 전 분기 대비 22%, 낸드가 18% 하락할 것으로 추정한다”며 “업체들이 밀어내기 경쟁을 하면서 출하량과 가격 하락 폭에 변동이 있을 수 있지만, SK하이닉스 실적 부진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메모리에 편중된 사업 구조도 실적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다. 지난해 SK하이닉스 매출에서 메모리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D램 63%, 낸드 32% 등 총 95%다. 시스템반도체 매출 비중이 20% 이상으로 추정되는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과 달리 SK하이닉스는 메모리 업황 악화에 더 취약한 구조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분기부터 중국 우시 공장 등 주요 라인의 웨이퍼 투입량을 줄이는 생산량 감축에 돌입했다. 상반기까지는 메모리 감산 기조를 이어갈 예정으로 알려졌다. 트렌드포스는 SK하이닉스의 D램 가동률이 1분기 92%에서 2분기 82%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반도체 업황과 실적은 바닥을 지나고 있지만, 그 바닥의 깊이가 예상보다 더 깊어 올해 SK하이닉스 적자 규모는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며 “메모리 현물가격이 좀처럼 상승세를 보이지 못하는 건 재고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가격 반등을 위해선 단기 고통이 따르더라도 재고 부담을 낮춰야만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