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분기보다 메모리 재고 급증···삼성전자·SK하이닉스 실적 ‘암울’
‘챗GPT’ 열풍으로 고부가 D램 수요↑···하반기에 감산 효과도 반영 전망
[시사저널e=이호길 기자] 지난해 하반기 이후 글로벌 경기침체 영향으로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침체 국면에 접어든 가운데 1분기에도 부진이 이어질 전망이다. 수요 회복 신호가 없어 재고가 증가하고 있단 점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 개선도 어렵단 평가가 지배적이다.
다만 인공지능(AI) 챗봇인 '챗GPT' 등 신성장 분야 투자 확대로 하반기 이후 업황 회복이 가능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AI 시대 본격화로 데이터 생성·저장·처리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메모리 반도체 수요 급증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주요 업체들의 감산 효과도 하반기부터 나타날 것이란 분석이다.
◇메모리 재고 15주 이상···“1분기 D램 가격 하락 예상, 30% 이상으로 확대”
20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메모리 업체들의 재고 수준은 15주 이상으로 평가된다. 지난해 말 재고는 10~12주 수준으로 파악됐으나 수요 부진 지속으로 약 2개월 만에 더 늘었다. D램의 경우 모바일용 제품이 8주 이상, PC와 서버용 제품이 각각 15주 이상 쌓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소비 위축으로 PC와 스마트폰 제조사 등 완제품업체들이 보유하고 있는 메모리까지 포함하면 재고는 이보다 더 늘어날 것”이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재고는 이미 역대 최대 수준이다. 제품을 생산할 때마다 손실이 발생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메모리 가격은 추가 하락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1분기 D램 가격에 대해 전 분기 대비 13~18% 하락이 예상된다며 PC와 서버용 제품은 20% 가까이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지난달 기준 PC용 D램 범용제품인 DDR4 8Gb 고정거래가격은 1.81달러로 전월(2.21달러) 대비 18.1% 떨어졌다.
황민성 삼성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반도체 가격은 계속 빠지고 재고평가손실은 늘어난다. 이 때문에 이제는 헐값이라도 처분을 서두르고 있다”며 “1분기 가격은 예상보다 더 나쁘다. 시장의 1분기 D램 가격 하락에 대한 예상은 12월에는 전 분기 대비 15% 수준에서 1월은 25% 수준, 이번 달에는 30% 이상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증권업계는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1분기 실적이 악화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은 1분기 적자 전환이 점쳐진다. DS부문의 분기 기준 적자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1분기가 마지막이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분기에 1조7012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1분기에는 2조5000억원 이상으로 영업손실 규모 확대가 예상된다.
◇생성형 AI 서비스 각광···HBM에서 ‘활로’ 찾는다
업계에서는 상반기까지 불황이 이어지다가 하반기 이후 수요 회복이 가능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최근 오픈AI의 챗GPT 서비스가 각광을 받으면서 글로벌 AI 투자 확대에 따른 수혜 효과 기대감이 높다.
챗GPT에는 엔비디아의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 약 1만 개가 탑재돼 연산을 수행하는데, 이 제품에는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연결해 기존 D램보다 데이터 처리 속도가 빠른 고대역폭 메모리(HBM)가 필수적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021년 업계 최초로 HBM3를 개발한 데 이어 이 제품을 엔비디아에 공급 중이다. 삼성전자는 고성능 메모리에 연산 기능을 내장한 HBM-프로세싱 인 메모리(PIM) 기술력을 갖췄다.
오픈AI의 챗GPT에 이어 구글, 중국 바이두, 국내 네이버 등이 생성형 AI 서비스를 선보였거나 연내 출시할 예정이어서 고성능 D램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HBM 가격은 기존 D램보다 3~5배 이상 비싼 고부가가치 제품이어서 응용처 확장은 메모리 기업 수익성 개선에도 일조할 전망이다.
HBM 공급 확대와 함께 메모리 업체들의 감산 움직임도 하반기 수급 불균형 해소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란 분석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말부터 수익성이 낮은 제품 중심으로 감산에 돌입했고, 미국 마이크론과 일본 키옥시아 등도 웨이퍼 투입량을 20% 이상 줄이기로 했다. 감산 효과가 시장에 반영되는 시점은 약 6개월 이후란 점에서 하반기에는 업황 개선이 가능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