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적인 굿즈, '덕질'의 중요 요소

[시사저널e=장민지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슬램덩크’ 극장판의 인기가 한창인 가운데 이에 대한 기사나 칼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나 또한 어린시절 슬램덩크를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으로 처음 접했고, 강백호와 서태웅을 응원하며 자랐다. 스포츠 장르 만화가 가진 서사구조나 코로나19 이후 오랜만에 느낄 수 있는 극장 단체 관람의 즐거움 등 몰입감의 요소를 하나하나 꼽자면 여러 가지겠지만, 무엇보다 이 열광 가운데 화제가 되고 있는 슬램덩크 굿즈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순 없을 것 같다. 굿즈는 일본에서 유래한 용어로 연예인을 상징하거나 특정 콘텐츠와 관련된 다양한 제품(열쇠고리, 대본집, 폴라로이드 등)을 뜻한다.

소위 종이만화라 불리는 만화책을 서점에 가서 구매하는 일은 이제는 많이 감소한 것처럼 보인다. 한국은 웹툰으로 만화를 연재하고, 연재 도중 단행본으로 엮어 E-book으로 유통시키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장본이라고 불리는, 그야말로 ‘소장’에 방점을 둔 종이만화책(이제는 굿즈 형태가 된)은 지속적으로 발간되며 끊임없이 소비된다. 슬램덩크의 경우도 이번 극장판 인기에 힘입어 소장본이 불티나게 팔리지 않았던가.

이런 콘텐츠 이용방식은 하나의 지식재산권(IP)이 변형되지 않더라도 다양한 매체로 전환을 통해 복수로 소구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열성적인 이용자들, 즉 팬덤의 특성 때문이다. 이는 하나의 IP를 다양한 형태로 소비할 수 있게 만드는 산업 생태계를 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웹소설은 독자들이 연재분으로도 소비할 뿐만 아니라 이 연재분을 모아 E-book으로 만들 경우에도 소비할 가능성이 높고, 이것을 굿즈의 한 형태인 ‘소장본’이라고 하는 ‘종이책’의 형태로 구매할 가능성도 높다. ‘데뷔 못하는 죽는 병 걸림’ 소위 ‘데못죽’의 경우 크라우드 펀딩으로 공식 굿즈 판매 행사에서 최종 4억7000만원을 모금하는 기염을 토했다.

마크 더핏(Mark Duffet, 2013/2016)은 자신의 책 ‘팬덤 이해하기’에서 “수집이라고 하는 것이 팬덤의 세계를 넘어서는 취미활동(269쪽)”이라며 최소 세 가지로 수집품을 구분할 수 있다고 언급한바 있다. 첫번째는 공연자체를 기록한 앨범, 두번째는 원래의 텍스트와 작가, 혹은 가수와 관련된 대량생산된 물품, 마지막으로는 관심 대상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 독특하고 개인적인 자료란 것이다. 특히 수집이라고 하는 것이 그 자체로 즐거울 뿐만 아니라 ‘완벽주의적 성격’을 가진 이들이나 ‘경제적 투자 동기’를 가진 이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물질문화(material culture)라고 하는 것은 모든 것이 비물질화되고 있는 가상의 공간이 팬덤 내부에 자리 잡기 시작한 현대의 관점에서 재해석 필요성을 갖는다. 수집가는 실제로 무엇을 보관하고 무엇을 처분해야 할지를 정기적으로 선택하며, 자신의 컬렉션을 체계적으로 획득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갖고 있다(Duffet, 2013/2016, 270쪽). 이런 숨겨진 가이드라인, 즉 규칙을 찾고 방식을 이해하는 것은 수집가의 정체성, 즉 팬 문화의 정체성을 분석할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더핏은 수집가의 컬렉션은 ‘열린 결말을 가진 역사적 기록(271쪽)’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아마도 팬들이 갖고 있는 수집가적 요소들로 미루어볼 때, 우리는 아마 몇십 년, 아니 몇백 년이 지나도 종이만화를, 종이책을, 그리고 내 손에 잡히는 물질적인 굿즈들을 구매하거나 소구할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것이 팬의 또 다른 애정의 이름이며, 팬 문화의 역사적 기록을 만드는 ‘덕질’의 중요한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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