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L, 포드와 기술합작 형태로 IRA 세제 혜택 노려
美 시장 K-배터리 독주 전망에 경고등 켜졌다는 전망
中 진출, IRA 세부 시행규칙에 한계 있다는 분석도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글로벌 배터리 점유율 1위업체 중국 CATL이 기술합작 형태로 포드와 손잡고 미 미시간주에 공장을 설립한다고 밝혔다. 중국 업체가 가격 경쟁력이 장점인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앞세워 북미 시장 공략에 나서면서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수혜를 독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던 K-배터리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블룸버그와 로이터 등은 소식통을 인용해 포드가 CATL과 협력해 미시간주 마셜 지역에 LFP 배터리 공장을 세울 계획이라고 지난 12일(현지시각) 보도했다. 공장 건설 계획은 이르면 이번 주중 발표될 전망이다. 2500명가량이 일하게 될 미시간 공장에 35억달러(약 4조4000억원)가 투입될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중국 업체들은 지난해 미 정부가 IRA를 발효시키면서 미국 시장 진출이 사실상 차단된게 아니냐는 평가를 받아왔다. IRA에 따르면 북미에서 제조·조립된 부품이 일정 비율 이상인 배터리를 사용한 차랑만 보조금 및 세액 공제를 부여받을 수 있다. 미국 내 반중 정서도 영향을 미쳤다. CATL은 버지니아와 미시간에서 합작공장 유치를 추진해왔는데, 지난달 버지니아 주정부가 '안보 위험'을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
이번에 알려진 CATL의 미국진출 방식은 기술합작이다. 공장의 지분은 포드가 100% 소유하고 CATL은 공장을 운영한다. 직접 투자를 피하면서 북미 공급망을 손에 넣는 방식이다. 중국 업체 입장에선 기존 배터리-완성차 업계가 진행해오던 지분합작 방식으로는 IRA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中 배터리-美 완성차 합종연횡···LFP에 이어 삼원계도?
저가형 배터리가 중국의 미국 진출을 도왔다. 포드의 저가형 배터리 탑재 전략에 CATL의 LFP를 대체할 공급사가 없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7월 포드는 올해부터 전기차 머스탱 마하-E 모델에, 내년 초부터 전기 픽업트럭 F-150 라이트닝에 CATL의 LFP 배터리 팩을 사용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LFP는 한국 배터리업체들이 주력으로 하는 NCM 등 삼원계 배터리보다 가격 경쟁력에서 앞서 있다. 단점으로 지목됐던 짧은 주행거리도 개선되고 있다.
글로벌 완성차들이 전기차 대중화를 위해 저렴한 전기차 개발에 나서면서 중국 업체를 향한 러브콜은 늘어날 전망이다. 테슬라를 비롯한 주요 완성차 업체들은 LFP 배터리를 채택하는 비중을 늘리고 있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당장 완성차 업체들이 중국 배터리 제조사에게 LFP를 공급받는 것 외에는 대체재가 없는 상황"이라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해 공급망 문제와 인플레이션 압박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원가 절감을 위해 LFP 채택을 본격화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계속되는 중국의 미국 진출 시도로 국내 배터리업계에도 긴장감이 돌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 등 배터리 3사들이 올해 대규모 증설 계획을 내놓은 가운데 CATL의 미국 진출로 한-중 사이 증설 경쟁은 보다 치열해질 전망이다.
IRA 발효로 북미가 국내 배터리 3사의 독주 무대가 될 것이란 전망도 흔들리고 있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CATL의 미국 진출을 통해 전세계 배터리 관련 회사들이 미국 내 둥지를 트는 시발점이 됐다"며 "(국내 업체들의 경우) IRA를 통한 특수를 누릴 기간이 짧아지게 된 셈이다"고 말했다.
삼원계 배터리 입지도 불안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LFP에 대한 수요로 미국에 진출한 중국 업체들이 공급망 다변화를 추구하는 완성차 업체들과 추가 계약을 맺을 발판이 생겼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미국 완성차 업체들은 삼원계 배터리의 파트너로 주로 국내 업체를 선택해왔다"면서도 "미국이 우리나라와 중국 배터리 제조사의 각축장이 될 가능성이 열린 만큼 앞으로 중국 업체의 삼원계 배터리가 미국에 진출하는지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이 교수도 "중국이 LFP배터리를 비롯해 삼원계 배터리까지도 미국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바라봤다.
◇IRA 규제 앞 中선전 한계 있다는 분석도
다만 CATL-포드가 미시간 공장을 통해 받을 IRA 수혜는 '반쪽 짜리'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CATL이 미국 내에서 배터리를 생산하더라도 전기차의 핵심인 배터리 소재, 핵심 광물 상당량을 중국 내에서 조달받기 때문이다. IRA는 북미에서 최종 조립하고 배터리에 들어가는 부품과 핵심 광물의 원산지 요건을 충족한 전기차를 대상으로 최대 7500달러(약 938만원)의 세액공제를 제공한다.
이 교수는 "미국 공장을 통해 배터리를 생산하게 되면 분명히 IRA 규제를 피해갈 수는 있다"면서도 "CATL은 대부분 소재와 핵심광물을 중국 내에서 조달받기 때문에 여기서 생산된 배터리를 탑재한 자동차의 경우 보조금을 절반 정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IRA 세부 시행규칙이 확정되지 않은 점도 변수다. 3월로 예상되는 '배터리 부품 및 핵심광물 요건 가이던스' 최종안에서 보조금 규정 등이 수정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CATL-포드 양사의 공장 건설 계획이 틀어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 교수는 "미국은 보호무역주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상황"이라며 "다른 방법을 통해서라도 중국의 배터리 시장을 견제할 방법을 찾아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ATL이 급한 선택을 내린 건 실보다 득이 크기 때문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CATL이 미국 진출을 선언한 건 IRA 제재와 관련해 자국 내 생산시설만 운영하는 것보다는 리스크가 적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미국 진출 사례를 통해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미국과 협력을 강화할 수 밖에 없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국내 배터리업계는 "현 상황을 예의주시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중국보다 이른 미국 진출로 경쟁력을 공고히 쌓아왔다는 점 또한 강조했다.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중국 업체들보다 먼저 미국 완성차 업체들을 고객사로 둬 왔다"며 "IRA 이전부터 공급망 다변화를 통해 미국 내 경쟁력을 강화했기 때문에 중국과 경쟁에서 밀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11월부터 GM과 합작법인인 얼티엄셀즈를 통해 미국 내에서 배터리 상업 생산에 돌입했다. SK온도 포드와 합작법인 블루오벌SK를 통해 켄터키주에 각각 43기가와트시(GWh) 규모 공장 2개, 테네시주에 43GWh 규모 공장 1개 등 연간 총 129GWh 규모의 3개 공장을 건설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