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소 8년, 파기환송 약 2년 만에 준비기일···공소장변경·심판범위 놓고 공방
변호인 “대법 명시적 판단 없으면 심판 대상···공소장변경 한계 넘어”
검찰 “파기 범위만 심판대상···공소사실 변경해도 방어권 침해 안 돼”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1300억원의 조세포탈 등 혐의로 8년째 재판중인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 측이 파기환송심에서 사건을 재심리하자는 입장을 내놨다. 검찰 측은 신속한 재판진행을 요구했다.
조 명예회장의 변호인은 1일 오전 서울고법 형사3부(재판장 박연욱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조 명예회장의 특정범죄 가중처벌등에관한 법률 위반(조세)등 혐의 파기환송심 공판준비기일에서 “이 사건 전반에 대한 재심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고 말했다.
변호인은 “검찰은 대법원이 파기한 부분에 대해서만 심리가 국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항소심에서 항소이유로 삼았으나 대법원이 명시적으로 판단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여전히 파기환송 심판 부분에 속한다”며 “(항소이유 부분에 대해) 다시 심리와 판단이 가능하다는 게 굳혀진 판례다”고 주장했다.
검찰의 공소장변경신청에 대해서도 변호인은 “검찰은 무죄취지로 파기환송된 2008년 사업연도 조세포탈 혐의를 2009년도로 이월했다”며 “이는 공소장 변경의 형식을 빌어 새로운 공소사실을 추가하는 것으로, 공소장변경의 한계를 벗어나고 공소사실의 동일성 역시 인정되지 않는다”고 반대 의사를 밝혔다.
앞서 검찰은 조 명예회장이 부실자산을 가공의 기계장치로 대체한 후 감가상각비 등을 손금 처리한 방식으로 2008년도 법인세를 포탈했다는 혐의가 대법원에서 파기되자 2009년 사업연도 조세포탈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공소장변경허가를 신청했다.
특히 변호인은 조 명예회장이 세무당국을 상대로 진행 중인 행정소송 결과를 지켜본 뒤 이번 형사사건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호인은 “행정소송에서 5번의 변론기일이 진행됐으나 입증계획이나 증거채부가 결정되지 않아 본격적인 심리가 이뤄지기까지 상당한 기간이 더 필요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며 “이 사건 중요쟁점이 행정소송과 겹치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한 판단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과 법무부 측은 조 명예회장 측의 이 같은 주장이 재판지연 목적에서 나온게 아닌지 의심한다. 해당 행정소송에서 입증계획이나 증거채부가 완료됐고, 재판이 종결단계에 접어들었는데도 변호인이 형사소송 재판부에 사실과 다른 의견을 냈다는 지적이다.
조 명예회장 측은 또 행정소송에서 미국에 있는 증인 소환을 요구하고, 전문가 의견 진술 등을 이유로 추가기일 지정을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행정소송은 법원 정기인사 및 회피사유 발생 등으로 두 차례 재판부가 변경되기도 했다.
이날 검찰 측은 “행정소송 진행상황이 정확히 파악되지는 않는다”면서도 “대법원이 파기한 부분에 대해서면 심리가 국한되어야 한다. 심판범위가 확정돼 있다면 신속하게 재판을 진행해 달라”고 말했다.
검찰은 또 공소장변경신청과 관련 “기존 공소사실과 기본적 사실관계가 같고 피고인의 방어권행사에 실질적 불이익이 초래되지 않는다”며 “공소장변경신청을 허가해 달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공소장변경신청을 허가할지 여부와 파기환송심 심판범위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재판부의 의견을 밝힐 필요가 있어 보인다”며 “한차례 준비기일을 속행하겠다. 다음 기일까지 변호인은 행정소송 쟁점이 무엇인지, 관련 자료를 가지고 있거나 파악할 수 있다면 정리해 소명자료를 제출해 달라”고 정리했다.
재판부는 다음 재판준비기일을 1월 17일로 지정했다.
조 명예회장은 분식회계와 탈세, 횡령, 배임 등 총 8900억원대 기업비리 혐의로 지난 2014년 1월 재판에 넘겨졌다. 항소심은 이 중 약 1300억여원 부분 조세포탈과 자본시장법 위반, 증권거래법 위반, 외감법 위반 등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고 조 명예회장에게 징역 3년과 벌금 1352억원을 선고했다. 다만 조 명예회장이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칠 가능성이 작다며 법정구속을 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그러나 지난 2020년 12월 조세포탈 혐의 일부를 무죄(2008년 사업연도 법인세 부분) 취지로, 상법 위반 혐의 일부를 유죄(2007년 사업연도 부분) 취지로 판단하며 사건을 되돌려보냈다. 이듬해 1월 서울고법에 사건이 접수되고 약 2년 만에 이날 기일이 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