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해·공=탱크·선박·항공부품’ 아우르는 韓 록히드마틴 노려
경영 탄탄대로 걸어온 김 부회장, 대우조선 성공·실패 여부에 주목
후계자 확정 후 첫 빅딜···한 번의 실패도 경영 커리어에 ‘주홍글씨’

김동관 한화 부회장. /사진=한화
김동관 한화 부회장. / 사진=한화

[시사저널e=유호승 기자] 한화그룹이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전격 결정했다. 김동관 한화 부회장을 중심으로 3세 후계구도가 완성된 가운데 진행되는 첫 대규모 인수합병(M&A)이다. 김 부회장은 대우조선의 대표 인수 주체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전략 부문 대표도 겸직 중이다. 그는 이번 인수 작업 및 향후 대우조선 운영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한화는 지난 26일 2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통해 대우조선의 지분 49.3%를 확보하는 내용이 담긴 조건부 투자합의서(MOU)를 체결했다. 현장 상세 실사를 거쳐 최종 인수자가 되면 오는 11월말 본계약을 맺을 계획이다.

인수 과정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한화는 초거대 종합 방산기업으로 도약한다. 육지의 경우 한화디펜스의 탱크, 바다의 경우 대우조선의 선박과 잠수함, 공중에서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항공부품 및 한화시스템의 위성 레이더 등 육·해·공을 아우르게 된다. 김승연 회장의 목표인 한국의 록히드마틴으로 거듭나는 셈이다.

앞서 김 회장은 2008년 10월 대우조선 인수를 추진한 바 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로 6조3000억원에 달하는 인수자금을 마련하는데 어려움을 겪어 다음해 1월 의지를 꺾어야했다.

김 회장이 구상했던 대우조선 인수는 장남 김동관 부회장의 주도로 결실을 맺을 전망이다. 2008년보다 3분의 1로 낮아진 2조원이라는 인수 자금만 보더라도 이번 계약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이번 대우조선 인수는 짧은 시간에 결정된 것이 아니다. 한화는 인수가 불발된 13년 전부터 꾸준히 관련 작업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 수주 가뭄으로 대규모 구조조정이 실시되고 분식회계 사건으로 주식거래가 중단되는 등 대우조선이 큰 위기 앞에 놓이자 인수 작업을 추진하기 어려웠다.

다만, 코로나19 회복기였던 지난해부터 해운 물류량이 늘어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으로 LNG 수요가 커지면서 글로벌 선박 발주량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대우조선은 현재 3년치의 일감을 확보한 상태다. 이를 통해 현재 시점을 ‘최고의 타이밍’으로 판단해 김 부회장을 중심으로 인수 과정이 진행된 것이다.

한화 관계자는 “대우조선의 이번 인수 과정은 단시간에 진행된 것이 아니다”며 “첫 인수 불발 후에도 꾸준히 모니터링을 해왔고, 김동관 부회장이 ㈜한화 전략부문 대표가 된 시점부터 대우조선의 수주량이 회복되면서 그를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인수 작업을 추진했다”고 귀띔했다.

김 부회장은 재계 신세대 총수 중 가장 탄탄한 경영행보를 걸어왔다. 그는 2010년 한화그룹 차장으로 입사해 2014년 한화솔라원에서 상무로 승진해 임원이 됐고 2019년 부사장이 되면서 한화솔루션 전략부문장을 맡았다.

2020년에는 사장으로 승진해 한화솔루션과 ㈜한화의 전략부문 대표가 됐다. 입사 12년차인 올해는 부회장으로 초고속 승진하면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전략부문 대표까지 겸직한다.

김 부회장에게 태양광 사업은 그의 대표적 경영성과인 동시에 정체성이다. 한화솔라원에 근무할 당시 큐셀 인수를 주도했고 솔라원과 솔루션을 거치며 태양광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해당 사업은 현재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과 영국, 독일 등 주요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기록 중이다.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한화는 에어로스페이스를 중심으로 각 계열사에 흩어져있던 우주·방산 역량을 총집결했다. 지배구조 개편까지 이뤄지며 오는 11월 에어로스페이스를 중심으로 한 방산 수직 계열화가 이뤄진다. 대우조선 본계약 체결 시기 즈음이다. 김 부회장은 방산과 조선 등을 조율할 핵심 인물이다.

단, 일각에선 대우조선 인수로 김동관 부회장에 대한 평가가 엇갈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가 후계자로 낙점된 상황에서 처음 진행된 2조원 규모의 대규모 빅딜인 만큼, 대우조선 인수과정에서 나타날 잡음과 향후 경영실적 등에 따라 그의 경영 커리어에 오점으로 남을 수도 있다.

오너 일가를 향한 재계의 경영 평가 잣대는 상당히 엄격한 편이다. 단 한 번의 실패가 경영활동의 ‘주홍글씨’가 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대표적이다. 그가 2000년 5월 삼성전자 상무로 근무할 당시 사재 500억원을 출연해 세운 인터넷 벤처 지주회사 ‘e삼성’은 그의 경영능력을 평가할 때마다 따라다니는 꼬리표다.

이 부회장은 1991년 삼성전자 총무그룹 과장으로 입사해 경영 수업을 받았다. e삼성은 10여년간 쌓아온 경영 수업의 성과를 보여줄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불과 수개월 만에 e삼성은 천덕꾸러기가 됐다. 인터넷·벤처 거품 붕괴로 e삼성은 1년 만에 100억원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했다. 이 부회장은 책임론에 시달려야만 했다.

김 부회장도 이 부회장과 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대우조선이 만성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노동조합 등과의 갈등으로 올해와 같은 불법파업이 계속된다면 그의 확고한 승계구도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

벌써부터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우조선 노조는 한화로의 매각 소식이 알려지자 거세게 반대 중이다. KDB산업은행이 임직원과 대화 없이 일방적으로 매각을 결정했다며, 관련 내용이 공개되지 않으면 파업을 시작하겠다고 으름장도 놓고 있다.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는 27일 기자회견을 통해 “산업은행은 일방적으로 재무적 측면만 생각해 어느 곳에라도 빨리 매각하면 된다는 판단 하에 조선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고려하지 않았다”며 “현재와 같은 한화에 대한 밀실·특혜 매각 작업이 계속된다면 노조는 모든 물리력을 동원해 파업에 나설 수밖에 없다. 매각 과정을 노조에 반드시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화 측은 국가 기간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겠다는 의지로 대우조선 인수에 나선 만큼 노조와의 적극적인 대화로 합리적인 관계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다. 아울러 노조와 고용유지 및 구조조정 계획 등도 적극적으로 협상할 예정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김동관 부회장은 경제계에서 모범생으로 꼽히는 인물”이라며 “유학 경험을 통한 국제감각과 함께 글로벌 네트워크, 사업능력, 경영성과, 인품 등 흠잡을 것이 없는 경영인이다. 하지만 대우조선 인수의 성패에 따라 지금의 평가가 180도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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