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그랜저 3685대 판매···작년 절반 수준에도 못 미쳐
반도체 대란에도 출고 대기 5~7주 불과···인기 차종은 4~6개월 이상 기다려야
내년 풀체인지 앞두고 수요 줄어···기아 K8 신형 출시도 영향
[시사저널e=박성수 기자] 현대자동차 내수판매를 책임지는 볼륨 모델인 준대형 세단 ‘그랜저’의 지난달 판매량이 반토막이 났다. 그랜저는 지난해 14만5463대를 팔아치우며 역대급 판매기록을 수립했으나 지난달에는 아반떼, 쏘나타에게도 밀리는 수모를 겪었다.
3일 업계에 따르면 그랜저는 지난달 3685대를 판매하며 전년대비 64% 감소했다. 같은 기간 아반떼(4447대), 쏘나타(4685대)보다 1000여대가량 판매가 뒤처진 셈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그랜저 판매 부진과 관련, “8월 여름 휴가 및 반도체 수급 문제로 인한 생산 차질이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단순 생산 차질로 인한 판매 부진이라고 보기에는 석연찮은 부분이 적지 않다. 여름 휴가 및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인한 생산 문제는 국내 전 차종에 해당되는 사항인데다, 같은 아산공장에서 생산하는 쏘나타의 경우 감소폭이 그랜저만큼 크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달 현대차 생산 계획을 살펴보면 그랜저는 총 6000대 생산을 목표로 했으며, 배정을 요청받은 물량은 7831대인 것으로 파악됐다. 계획량과 배정받은 물량 차이가 크지 않아, 출고 대기도 평균 5~7주 정도 걸리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반도체 부족 사태 전보다 2~3주 정도 늘어난 수준이다. 즉, 생산차질 문제는 생각보다 정작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같은 기간 현대차 다른 인기 차종을 살펴보면 아반떼는 4개월, 싼타페 하이브리드 4개월, 투싼 하이브리드 5개월, G80 전기차 6개월 등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에는 그랜저 출고 대기기간이 9주까지 늘어났으나 여전히 다른 인기 차종과 비교하면 짧은 수준이다.
그랜저 경쟁 모델인 기아 K8의 경우 생산 계획량이 6350대인데 비해, 요청받은 물량은 4만4791대로 공급보다 수요가 7배가량 많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그랜저의 부진은 생산 차질 영향도 있겠으나, 수요 자체가 줄어든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수요 부진의 이유로는 그랜저가 내년 완전변경(풀체인지)을 앞두고 있는 데다, 최근 기아 K8이 신형을 출시한 점 등이 꼽힌다.
그랜저는 지난 2016년 11월 6세대 모델을 출시했으며, 보통 현대차 풀체인지 주기가 5~6년인점을 감안하면 내년 공개될 가능성이 높다. 아직 그랜저 풀체인지에 대한 자세한 정보나 일정은 공개된 바 없으나, 현대차 안팎에선 사실상 내년 출시를 확실시하는 분위기다.
7세대 그랜저의 경우 3세대 플랫폼을 탑재하고 커넥티드 기능을 강화한 새로운 운영체제(OS)를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K8이 전장을 5m이상으로 늘린 상황에서, 신형 그랜저는 이보다 전장을 더 키워 사실상 대형급 세단으로 바뀔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보통 풀체인지 소식이 알려지면 현세대 모델 판매가 줄어드는 것은 자연스런 수순이다”며 “오히려 그랜저는 2019년 말 부분변경 출시 이후에도 1년 반 가까이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게 이례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K8 신형 출시도 그랜저 판매 감소를 부채질하고 있다. K8은 사전계약 하루 만에 1만8015대를 기록하며 역대 기아 세단 중 가장 높은 성적을 냈다. 이후 12일 만에 총 2만4000여대를 계약하며 올해 판매 목표인 6만대의 40%를 채웠다.
K8은 그랜저보다 전장, 휠베이스(축간거리)가 더 길어졌으며 실내 디자인도 제네시스를 연상 시킬 정도로 고급스럽게 바뀌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K8 계약은 폭주하고 있는데 비해 공급이 이를 따라가지 못해 갈수록 출고대기가 길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언급했듯 K8은 지난달 6개월 이상 출고가 밀린 것으로 확인됐으며, 이달에도 계약이 계속 늘어나면서 대기 기간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K8 대기줄이 길어지면서 고객이탈이 발생해 그랜저가 반사이익을 누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당장 차를 교체해야 하는 소비자들이 상대적으로 출고 대기 기간이 짧은 그랜저에 눈을 돌릴 것이라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