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공시 통해 “애플과 협의 진행하고 있지 않다” 밝혀···시총 10조원 증발
‘신비주의’·‘하청업체 우려’ 등 영향 준 듯···시차 둔 협의 재개 가능성은 남아
[시사저널e=이창원 기자] 현대자동차그룹과 애플 간 ‘애플카’ 협업 협의가 중단됐다. 세계적 IT(정보기술)기업과 완성차 기업 간 협업 가능성에 큰 관심을 모으며 기대가 컸던 만큼, 양사간 협력 중단 사실이 공식화되자 현대차의 시가총액과 주가는 급락했다.
이번 협의가 불발된 것을 두고 업계에서는 애플 특유의 신비주의, 비밀주의 등이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내부에서도 ‘하청업체’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며 합의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애플카의 생산 시기는 이르면 오는 2024년으로 점쳐지고 있어 여론이 잠잠해지면 현대차그룹과 애플이 협상을 재개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8일 현대차는 공시를 통해 “당사는 다수의 기업으로부터 자율주행 전기차 관련 공동개발 협력 요청을 받고 있으나, 초기 단계로 결정된 바 없다”며 “애플과 자율주행차량 개발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당초 이날 공시에 별다른 언급이 없을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애플과의 협력 중단을 공식화 했다.
앞서 현대차는 ‘애플카 협력설’에 대해 결정된 바 없다고 밝혀오기는 했지만, 협의 자체는 부인하지 않으면서 업계의 관심을 키워왔다. 이 같은 관심 속에 애플, 현대차, 기아 등의 주가는 지난주까지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날 공시 발표로 현대차와 애플 간 협력설은 힘을 잃게 됐고, 이는 주가의 급락으로 이어졌다. 이날 현대차 주가는 전장 대비 5.81% 감소한 23만5000원에 거래를 마쳤고, 기아의 주가도 8만6500원에 장을 마치며 전장 대비 14.78% 급락했다. 현대차의 시총은 이날만 약 10조원 이상 증발됐다.
향후 현대차, 기아 등의 주가는 협력설 이전의 수준으로 조정되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온다. 현대차, 기아 등이 올해 전기차 전용 플랫폼(E-GMP)을 중심으로 한 사업 다변화 전략을 밝힌 부분도 있지만, 주가 상승의 주 원인은 애플과의 협력설이 크게 영향을 미친 만큼 현재 협상이 불발된 상황에서 주가 하락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현대차와 애플의 협상 중단은 협상 과정에서 나온 잇따른 보도 때문이라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애플은 해당 보도에 대해 불편함을 드러내며 현대차에 언급 자체를 하지 말 것을 요구해왔지만, 현대차가 간접적으로 애플과의 협력설을 공식화하자 등을 돌렸다는 해석이다. 아울러 현대차와 애플의 협력설에 주가가 급등하면서 애플이 이에 부담감을 느껴 협상 중단에 이른 것으로 업계는 받아들이고 있다.
여기에 현대차 내부에서 우려가 제기됐다는 점도 작용했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기존 애플의 대만 기업 폭스콘과의 스마트폰 사업 협업 과정을 감안하면, 현대차가 단순 수탁생산만 맡게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를 ‘전기차 전환 원년’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내비쳐온 현대차로써는 전기차 사업의 주도권을 애플에 뺏길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해 왔다.
당장 현대차와 애플의 협상은 중단됐지만, 두 기업이 재차 접촉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되는 분위기다. 여론이 주목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협상이 순탄하게 진행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지만, 시차를 두고 긴밀한 협의가 가능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무엇보다 애플이 자율주행 전기차인 애플카로 시장에 진출해 업계 선두를 달리고 있는 테슬라와 정면승부를 펼치기 위한 파트너로 현대차만한 완성차 기업이 많지 않은 만큼, 협상의 문을 완전히 닫을 수는 없을 것이라는데 무게중심이 실리고 있다.
앞서 현대차는 독자적인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구축했고, 미국 생산 공장도 보유하고 있어 애플카 생산 시 강력한 시너지 효과가 기대돼왔다. 최근 기아가 미국 조지아주 공장을 해외 전기차 생산 베이스 전환을 준비하고 있고, 애플과의 최종 합의 시 해당 공장이 주 생산공장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공시 문구도 원론적인 측면이 있고 애플과의 협상 과정, 향후 협상 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는 것은 현대차도 협상 재개를 염두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