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낸드 시장 점유율 20%대로 상승 전망
옵테인 사업부는 제외…기업용 SSD 등 고부가 사업 경쟁력 강화
[시사저널e=윤시지 기자] SK하이닉스가 10조원이 넘는 재원을 투입해 인텔의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인수한다. SK하이닉스는 D램 뿐만 아니라 낸드플래시에서도 삼성전자에 이어 확실한 2위 자리를 굳히게 될 전망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2012년 SK하이닉스를 인수한 후 일본 낸드플래시 업체 키옥시아(구 도시바)에도 지분을 투자하는 등 SK하이닉스 낸드플래시 경쟁력 강화를 모색해왔다. 이번엔 10조원에 달하는 ‘통 큰 투자’를 단행하며 3위 업체와의 격차벌리기와 함께 삼성전자와 격차도 좁히게 됐다. SK하이닉스는 인텔 낸드플래시 인수로 점유율을 대폭 끌어 올리는 동시에 그간 취약했던 기업용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SSD) 등 고부가 사업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목표다.
◇D램 이어 낸드 매출 시장 2위로
20일 SK하이닉스는 인텔 낸드 SSD, 낸드 단품 및 웨이퍼 비즈니스, 중국 다롄 공장 등을 인수한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는 인텔 중국 낸드 생산 설비는 물론 SSD 관련 지적재산권(IP)과 인력까지 통으로 확보하게 된다.
인수 총액은 90억달러(10조3104억원)으로 삼성전자 하만 인수를 뛰어넘는 우리나라 M&A 역사상 최대 규모가 될 전망이다. 양사는 각국 정부의 규제 승인이 완료될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 말까지 중국 다롄 공장과 SSD 사업부문 이전을 진행하며, 이후 2025년 3월 잔여 자산 이전을 진행한다. 이번 인수 대상에 인텔 옵테인 사업은 포함되지 않았다.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시장 지형변화를 주목해왔고 인텔과 이해관계도 맞아떨어지면서 계약을 성공시켰다. 인텔은 중앙처리장치(CPU) 등 사업에 보다 주력하기 위해 수익성이 저조한 메모리 사업을 정리해왔고, SK하이닉스는 D램 시장에선 강자지만 낸드플래시 시장 입지는 약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 2분기 SK하이닉스 낸드플래시 점유율은 11.7%(16억9440만달러·약 2조원)다. 삼성전자, 키옥시아, 웨스턴디지털에 이어 4위에 그쳤다.
이 기간 인텔 점유율은 11.5%(16억5900만달러·1조8000억원)로 마이크론과 함께 5위를 기록했다. SK하이닉스와 인텔 점유율만 단순 합산하면 23%에 가까운 점유율이 나온다. SK하이닉스가 1위인 삼성전자(31.4%)에 이어 키옥시아를 제치고 2위 사업자로 등극할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를 제외한 낸드플래시 업체들이 10%대 점유율을 나눠갖고 있는 가운데 확실히 치고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맞이했다.
동시에 SK하이닉스는 이번 기회를 통해 기업용 SSD 등 고부가 제품을 중심으로 사업 경쟁력을 강화할 것으로 관측한다. 인텔은 전체 낸드 플래시 시장에서 입지가 미미하지만 기업용 SSD 시장에선 삼성전자에 뒤를 잇는 2위 사업자로 꼽힌다. 반면 낸드 시장에 후발로 진입한 SK하이닉스는 기업용 SSD 시장에선 경쟁력이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SK하이닉스가 인텔의 SSD 사업의 IP와 관련 인력을 모두 인수하는만큼 향후 경쟁력을 개선해 나갈 기회로 분석된다.
노근창 현대차투자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가 노트북이나 모바일 스토리지 사업에선 상당히 성장했지만 서버에 탑재되는 SSD의 경우 경쟁력이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았다”면서 “SK하이닉스에겐 낸드 플래시보다는 고수익을 보장하는 SSD 사업이 더 중요한 상황이다. 이번 인수가 단순히 중국 다롄 공장 인수를 넘어 SSD 솔루션까지 확보하기 때문에 기업용 SSD 사업을 중심으로 추가적인 성장이 가능한 기회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발목 잡던 SSD 사업 강화...흑자 전환은 '아직'
낸드플래시는 D램과 달리 최소 5개 사업자들이 10% 내외 점유율을 쥐고 싸우는 과점 시장이라 경쟁이 치열하다. 지난해 SK하이닉스는 낸드 사업에서 연간 2조~3조원 수준의 적자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 고부가 SSD 판매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다 보니 낸드 가격 하락 여파가 컸고 여기에 96단 낸드 양산 초기 수율이 낮은데다가 신공장 가동에 따른 부담까지 삼재가 겹쳤다.
이에 SK하이닉스는 올 들어 SSD 판매 비중을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다. 올 2분기엔 낸드 사업에서 SSD향 매출 비중을 분기 최초 50%대로 끌어올렸다. 이에 같은 기간 전사 영업이익은 전 분기 대비 143%, 전년 동기 대비 205% 급증한 1조9467억원을 기록했다. 이 같은 사업 전략이 인텔의 SSD 기술 및 사업 노하우와 맞물려 보다 탄력받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다만 시장에선 이번 인수 전략이 단기적인 수익성보다는 장기적인 사업 경쟁력에 중점을 둔 것으로 평가한다. 사업 외형이 커지다 보니 당장 수익을 내긴 어렵지만 장기적으로 SSD 제품 경쟁력을 제고해 시장 입지를 확대해 나갈 것이란 전망이다. 김경민 연구원은 이날 보고서를 통해 “SK하이닉스 입장에서 메모리 산업의 경쟁력이 강화되는 점은 주가에 긍정적이나 낸드 플래시 사업의 단기 흑자 전환이 어렵다는 점은 부정적”이라고 분석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SK 입장에선 키옥시아에 대한 투자로 4조원 가까이를 썼는데 또 10조원 넘는 돈을 수익도 별로 나지 않는 낸드 사업에 투자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면서도 “그간 최대 약점으로 거론됐던 엔터프라이즈용 SSD분야에서 일거에 두각을 나타낼 수 있고 어정쩡한 4~5위에서 확실한 2위자를 꿰찰 수 있는 선택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