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자 위치와 유통자 위치 함께 점유

현재 팬덤에서 일반적인 현상으로 나타나는 팬들의 생산적 활동은 과거엔 연구의 케이스로 쓰일 정도로 희귀한 일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관련된 무언가를 직접 만들어 나눔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것들을 가내수공업 방식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던 건, 수용자의 입장이었던 ‘팬’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알리기 위한 방안이었다. 

팬들은 ‘없으면 자신이 직접 만든다’는 것을 모토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주변에 확산시키고자 하는 욕망을 명확하게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욕망은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를 통해 점차적으로 가시화됐을 뿐, 그 전까지 다양한 목적을 가진 ‘모임’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잘 생각해보면, 독서클럽에서 자신이 읽은 책들의 후기를 나누고, 그것들을 추천하는 집담회들은 이러한 욕망이 잘 반영된 모임들 중 하나다. 종교, 정치 다양한 분야의 커뮤니티 또한 마찬가지다. 전도라는 것, 이념을 나누는 것 모두 자신이 좋아하고 믿는 것들을 확산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소셜 미디어의 발달은 사람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말들을 다양한 채널로 쏟아낼 수 있는 공간들을 타임라인에 만들어내기 시작했는데, 그것 중 눈에 띄는 것 하나는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직접 큐레이팅해 전시하는 작업이다. 

현재의 미디어 생태계는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보고 느낀 것들을 다양한 형태로 전시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소유하게 됐다. 

예전에도 제한적으로나마 존재했던 그 공간은 대체적으로 사적이고 비공개적인 형태였다(아마도 일기장이 대표적일 것이다). 그러나 텀블러,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과 같은 웹 공간은 자신이 설정을 비공개로 두지 않는 한 언제든지 검색을 통해 공개될 수 있고 공유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는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할 의도가 없었다 하더라고, 타이밍이 맞으면 엄청난 속도로 공감을 불러오거나 공유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와중에 취향이라는 것이 하나의 콘텐츠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많은 시간을 콘텐츠 이용이 아닌 선택지를 살펴보는데 허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넷플릭스나 왓챠플레이, 웨이브, 심지어 네이버, 카카오페이지, 리디북스 등 많은 사이트들에서 끊임없이 인공지능(AI)을 통한 콘텐츠 추천을 수행하고 있지만, 이용자들의 취향을 맞추기는 어려운 법이다. 

이 상황에서 자신의 취향을 큐레이팅하는 방식의 콘텐츠들이 쏟아지고 있고, 의외로 이러한 콘텐츠 리뷰 자체의 이용률이 높아지고 있다. 이 또한 콘텐츠 지적재산권(IP) 확산 전략 중 하나다.

팬들은 자신이 열광하는 무언가를 위해 끊임없이 자체적으로 무언가를 생산한다. 그리고 그것을 공유하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생산자의 위치와 유통자의 위치를 함께 점유할 수 있게 됐다. 잘 살펴보면, 팬덤 내부에 콘텐츠 기획과 생산, 그리고 유통과 배급이 함께하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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