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VC, 국내 최초 개발…KAIST와 연구소 설립도

한화케미칼은 세계적으로 석유화학제품 수요 부진과 공급 과잉 현상이 지속하는 상황에서 고부가 제품 개발을 돌파구로 삼았다. / 이미지=조현경 디자이너

한화케미칼은 세계적으로 석유화학제품 수요 부진과 공급 과잉 현상이 지속하는 상황에서 고부가 제품 개발을 돌파구로 삼았다. 김창범 한화케미칼 사장도 지난해 “고부가 제품 확대와 사업구조 고도화를 통해 체질을 개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석유화학 업계는 지난해 사상 최대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중국의 추격과 호·불황이 반복되는 사이클 산업의 특성상 마냥 기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이 와중에 한화케미칼은 기술력을 통한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에 사활을 걸었다.

한화케미칼은 지난해 기술 측면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 한화케미칼이 독자 개발한 기술이 국가기술표준원으로부터 잇따라 신기술인증(NET)을 획득했다. 신기술 인증을 받은 기술은 고부가 제품인 염소화 폴리염화비닐(CPVC)과 하이브리드 메탈로센 촉매다. 신기술 인증은 조기 상업화가 가능한 기술 중 기존 제품의 기능을 현저히 개선할 수 있는 기술에 대해 국가가 인증하는 제도다.

CPVC는 범용 제품인 폴리염화비닐(PVC)보다 한 단계 진화한 제품이다. PVC는 건축용 파이프 라인 등을 만드는 데 쓰인다. PVC는 한화케미칼의 효자 상품이었지만 중국의 생산 증가로 공급과잉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 PVC 생산능력은 2010년 연산 1790만톤에서 지난 2015년 3170만톤으로 77% 늘었다. 반면 2015년 중국 내수는 1630만톤에 그쳤다. 이에 중국 업체들은 남은 PVC를 저가로 해외 시장에 판매하고 있다. PVC 가격 하락으로 2011년 2조원을 넘어서던 한화케미칼 PVC사업 매출은 지난 2015년 1조6000억원까지 떨어졌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 4000억원도 1000억원대로 쪼그라들었다.

반면 CPVC는 만들기 어렵다. 일반 PVC보다 가격도 2배 가까이 비싼 것으로 알려졌다. CPVC는 PVC에 염소 함량을 10% 늘린 소재로 열과 압력에 강하고 부식에 잘 견딘다. 이 장점 덕에 CPVC는 소방용 스프링클러 배관, 온수용 배관, 산업용 배관 등으로 광범위하게 쓰인다. CPVC 시장 규모는 지난 2015년 기준 약 25만톤이다. 업계에 따르면 해당 시장은 매년 10%씩 성장할 전망이다.

 

지난해 12월 서울 양재동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제3회 신기술 인증서 수여식에서 메탈로센 하이브리드 촉매 시스템을 개발한 이성우 한화케미칼 연구임원(왼쪽)과 CPVC 제조기술을 개발한 진선정 한화케미칼 수석연구원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사진=한화케미칼
CPVC 생산은 그동안 미국 루브리졸, 일본 가네카, 일본 세키스이, 프랑스 켐원 등이 장악하고 있었다. 일종의 독과점 시장이다. 한화케미칼은 이 시장에 뛰어들기 위해 1990년대 중반 두 차례 기술 개발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러다 2012년 1월 다시 기술 개발에 나섰다. 한화케미칼은 4년간 연구개발 끝에 2015년 말 이 기술을 독자 개발했다. 국내 최초, 세계 다섯 번째 독자 개발이었다. 한화케미칼은 올해 3월 상업 가동을 목표로 울산에 연 생산 3만톤 규모의 CPVC 공장을 짓고 있다.

한화케미칼은 중국 닝보 PVC공장에도 이 기술을 적용할 계획이다. 한화케미칼 관계자는 “해외 업체와 기술 제휴가 아닌 자체 기술로 공장을 건설함으로써 투자비, 운영비 절감은 물론 기술 수출 가능성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한화케미칼은 ‘차세대 촉매’로 불리는 메탈로센 촉매의 특성을 이용한 ‘메탈로센 하이브리드 촉매 시스템’도 개발했다. 메탈로센은 화학제품을 생산하는데 쓰이는 촉매의 일종으로 고부가 제품에 주로 활용된다. 이 기술로 단일 촉매를 사용하는 기존 방식 대비 강도와 가공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이 기술을 적용하면 50년 이상 고온과 고압을 이겨낼 수 있는 강도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제품의 용도에 따라 맞춤식 제작도 가능하다. 기술 개발은 2013년 1월부터 지난 10월까지 3년여가 걸렸다.

한화케미칼은 지난해 KAIST와 공동으로 미래기술연구소를 설립하기도 했다. 국내 석유화학 회사가 KAIST와 공동으로 연구소를 만들기는 처음이다. 한화케미칼은 연구소 설립이 국내 석유화학 업계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20년까지 5년간 운영되는 미래기술연구소의 주요 연구과제는 차세대 석유화학 물질 원천기술 및 제조기술 개발, 고순도 정제 공정 개발 등 사업성이 높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기술개발이다. 연구소가 개발하는 신기술의 특허권은 한화케미칼과 KAIST가 절반씩 공동으로 소유한다. 한화케미칼은 신기술로 상업생산이 시작되면 이익의 일부를 카이스트와 공유하기로 했다.

한화케미칼 관계자는 "대외 변수의 영향이 큰 화학 산업에서 안정적인 성장이 가능하도록 제품 포트폴리오 조정과 원천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고부가 특화 제품 비중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원천 기술 개발에 매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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