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전 동시소환…문화계 “형사처벌 당연”
박근혜 정부에서 대통령을 제외한 마지막 성역으로 불리던 김기춘(78)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정권의 신데렐라 조윤선(51)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동시에 특검에 소환됐다. 특검은 두 사람에 대한 구속영장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문화계는 두 사람이 형사처벌이 되어야 블랙리스트 정국이 일단락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또 문화계는 블랙리스트 소송대리인단을 구성해 손배소에도 나서는 등 움직임이 분주한 모습이다.
17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하는 박영수 특검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김기춘 전 실장과 조윤선 장관을 서울시 대치동 특검 사무실에 불러 조사하고 있다. 두 사람은 직권남용 등 혐의를 받는 피의자 신분이다.
오전 9시 25분 검은색 상·하의 차림으로 모습을 드러낸 조윤선 장관은 기자들에게 “조사에 성실히 응하겠다”며 “특검에서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특검 사무실로 들어갔다. 조 장관은 2014년 6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재직하며 리스트 작성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앞서 조 장관은 9일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야당의원의 거듭된 추궁에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결국 시인하면서도 본인 취임(2016년 9월) 후에는 집행은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특검은 조 장관 취임 후 교체된 하드디스크까지 찾아내 여러 물증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문체부 공무원 등 혐의를 입증할 관련자 진술도 확보해놓은 상태다. 특검이 현직 장관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하는 까닭은 이 같은 자신감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특검은 지난 12일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과 정관주 전 문체부 제1차관과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등 3인을 구속하면서 조 장관을 향한 압박강도를 높였었다. 정 전 차관과 신 전 비서관은 조 장관이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재직 시 함께 근무했다. 서울대 외교학과 동문이기도 한 정 전 차관과 조 장관은 문체부에서도 함께 일했다.
이로써 박근혜 대통령의 신데렐라로 불리던 조 장관은 정치인생 최대 위기를 맞은 모습이다. 조 장관은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선거대책위 공동대변인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비례대표로 18대 국회에 입성했다.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있을 때부터 인수위 시기까지 대변인으로 일했다. 정권 출범 후에는 여성가족부 장관과 정무수석, 문체부 장관으로 승승장구했다.
조 장관이 들어간 이후 9시 55분에는 김 전 실장이 특검 사무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 전 실장은 ‘아직도 최순실을 모르는가’, ‘증거를 인멸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공직자로서 한 마디만 해달라’는 기자들의 연이은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특검 사무실로 들어갔다.
2013년 8월부터 2015년 2월까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근무하며 정권의 2인자 노릇을 한 김 전 실장은 재임 시기 블랙리스트 작성과 관리의 총괄책임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 전 실장의 경우 휴대폰과 서류 등 관련 서류를 상당부분 파기해 증거인멸 혐의에도 휩싸여있다. 17일 CBS노컷뉴스도 특검 관계자의 말을 빌려 김 전 실장 자택 폐쇄회로(CC)TV 기록을 디지털 포렌식 장비로 복구까지 해가며 증거확보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그럼에도 특검이 김 전 실장을 조 장관과 마찬가지로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한 만큼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내보였다는 해석이 나온다. 앞서 특검 대변인인 이규철 특검보는 “수사팀 사정으로 동시 조사가 적절하다고 판단”했다며 “(대질도) 필요하면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로써 비서실장으로 공직인생의 피날레를 장식하려던 김 전 실장도 최대 위기를 맞게 됐다. 김 전 실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인 육영수 여사의 저격범 문세광의 범행자백을 받아내며 35살에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이 됐다.
전두환 정권서 기회를 얻지 못한 김 전 실장은 이후 노태우 정권 출범 후 검찰총장으로 화려하게 돌아왔다. 총장 퇴임 후 법무부장관까지 역임한 김 전 실장은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공천을 받아 3선의원을 지냈다. 이후 박근혜 대통령 자문 원로그룹인 7인회에 속해 있다가 2013년 75세 나이에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발탁됐다.
특검은 김 전 실장과 조 장관 모두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청문회에서의 위증 혐의도 영장청구의 주된 고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9일 이규철 특검보는 “(블랙리스트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의) 주된 혐의는 직권남용”이라며 “관련자에 따라 위증죄 여부가 같이 고려될 수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가시화에 대해 문화계에서는 당연한 결과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앞서 11일 문화예술인들은 세종시 문체부 청사 앞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버스 선언문’을 통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의 실체는 박근혜, 김기춘, 조윤선으로 이들을 즉각 처벌해야 한다”고 밝히며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의 즉각 구속을 주장했었다.
또 문화계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참여연대 소속 변호사 10여명을 중심으로 ‘블랙리스트 소송대리인단’을 구성해 손배소에 나서겠다는 복안도 16일 밝혔다.
그 자신이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한 문화계 인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문화계는) 지금 (블랙리스트 같은) 현실적 사안에 대해 목소리를 결집 중이다. 두 사람이 처벌돼야 이 상황이 일단락 될 것”이라며 “향후에는 조기대선을 염두에 둔 정책제안 움직임도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