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사 철회 6개월 만에 재추진
소액주주 반대에도 물적분할 선택

[시사저널e=이호길 기자] DB하이텍이 팹리스 사업을 분사하는 물적분할을 재추진하자 주주권익이 훼손될 것이라며 소액주주들이 반발하고 있다. 회사는 거래선 이해 상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도체 설계 사업부를 자회사로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물적분할은 존속법인이 신설법인 지분 100%를 보유한단 점에서 주주가치 하락 우려가 있다.

물적분할과 인적분할 등 분사 방법을 떠나서 분할이란 이슈 자체가 주주들에게는 민감한 문제다. 이 때문에 분할은 신중하게 추진돼야 하고, 주주들과의 소통이 중요하다. 그러나 DB하이텍은 이런 과정 없이 물적분할을 발표했다.

더군다나 DB하이텍은 지난해 분사를 검토하다가 소액주주들이 완강하게 반대하자 이를 철회한 바 있다. 분사 검토 중단 6개월 만에 주주들과의 소통도 없이 물적분할을 재추진하자 비판 여론이 나온 건 당연해 보인다.

DB하이텍은 분사 카드를 다시 꺼낸 이유에 대해 지난해 말 주식매수청구권 부여를 골자로 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공포돼 주주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갖춰졌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 순수파운드리 기업으로 전환해야 이해 상충 문제에서 벗어나 회사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행령 개정으로 물적분할에 반대하는 주주들에게 매수청구권이 부여돼 물적분할에 대한 보호장치가 마련된 건 사실이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이와 동시에 주주들과의 소통을 강조하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개정한 ‘기업지배구조보고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상장기업이 물적분할 등 지배구조를 변경할 때는 소액주주와의 간담회 개최 등을 통해 주주와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아울러 순수파운드리 기업으로의 전환을 위해 분사가 필요했다면 물적분할에 비해 주주가치 훼손 우려가 상대적으로 낮은 인적분할이란 방법이 있다. 인적분할은 기존 주주가 지분율대로 신설법인의 주식을 나눠 갖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주주들이 분사가 불가피하다면 인적분할을 고려할 의사는 없냐고 회사에 묻기도 했지만, DB하이텍은 물적분할을 선택했다.

DB하이텍 분사 여부는 오는 29일 개최되는 주주총회에서 결정된다. DB하이텍은 최대주주인 DB아이엔씨와 김준기 전 DB그룹 회장 등 특수관계인 비중이 17.84%로 높지 않고, 지난해 결성된 소액주주연대가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있단 점에서 주총에서 표 대결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결과는 뚜껑을 열어봐야겠지만, 어느 쪽으로 결정되더라도 주주들의 가치가 극대화되는 방향으로 매듭지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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