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공정위 조건부 승인 결정···독점 우려되는 슬롯 및 운수권 이전
고수익 알짜 노선 반납에 따라 통합 후 시너지 효과 약화···외항사만 배불릴 수 있다는 지적도
항공산업 특수성 이해 못한 정책이란 비판도···대외변수 및 경영자율성 고려 안 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항공기. / 사진=연합뉴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항공기.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박성수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을 조건부 승인하기로 최종 결론냈다.

공정위는 독점이 우려되는 국제선과 국내선 일부 노선에 대해선 신규 항공사가 취항할 경우 슬롯(공항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 및 운수권(노선에 취항할 수 있는 권리)을 이전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 전까지 해당 노선에 대해선 운임인상 및 좌석 공급 축소 등을 제한하기로 했다.

다만 슬롯 및 운수권을 뺏기게 될 경우 당초 기대했던 통합 항공사 출범에 따른 시너지 효과는 약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22일 공정위는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주식 63.88%를 취득하는 기업결합을 조건부 승인하기로 했다.

공정위는 두 회사 결합 이후 시장 경쟁을 제한하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독과점이 우려되는 일부 노선에 대해 슬롯과 운수권을 개방해야 한다고 했다. 통합 항공사는 출범 이후 우리나라 국제선의 약 48.9%, 국내선 62%의 점유율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독과점 요소가 크다는 것이다.

양사 합병으로 인해 중복이 발생하는 노선은 국제선 65개, 국내선 22개, 화물 26개, 기타 6개 등 총 119개다.

공정위는 이 중 국제선 26개 노선, 국내선 14개 노선에서 경쟁제한성이 있다고 판단했으며, 해당 노선에 대해선 경쟁사의 신규 진입을 촉진하기 위해 향후 10년간 슬롯·운수권 이전 등 구조적 조치를 부과하기로 했다.

공정위는 통합 항공사를 견제할 마땅한 경쟁사가 없다는 점, 양사 통합으로 인해 서로 가장 강력한 경쟁사가 사라져 운임 인상 가능성이 높다는 점 등을 이유로 시정 조치를 시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 그래픽= 김은실 디자이너
/ 그래픽= 김은실 디자이너

먼저 국내 공항 슬롯의 경우 신규 항공사가 진입하거나 경쟁 항공사들이 증편할 경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보유한 슬롯 반납을 의무화했다. 대상은 국제선 26개 노선, 국내선 8개 노선이다.

운수권도 새로운 항공사가 들어올 경우 반납해야 한다. 대상은 유럽 프랑크푸르트, 런던, 파리, 로마, 이스탄불과 중국 장자제, 시안, 선전, 베이징 그리고 시드니, 자카르타 등 총 11개 노선이다.

슬롯이나 운수권 반납 관련 구체적인 내용은 신규 항공사가 진입 신청 시점에 공정위와 국토교통부가 협의해 정한다.

다만 공정위는 코로나19에 따른 항공시장 불확실성 때문에 단기간 내 모든 노선에 새로운 항공사가 진입하기 힘들다는 점을 고려해, 구조적 조치 이행 전까지 소비자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행태적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행태적 조치의 경우 각 노선에 대한 운임인상 제한, 공급축소 금지, 좌석간격·무료수하물 등 서비스 품질 유지, 항공마일리지 불리하게 변경 금지 등이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이번 항공 결합은 30년 이상 우리나라 항공 운송 시장을 양분하던 양대 항공 체제가 변화하는 것으로 국내 대형 항공사간 최초 결합 사례다”라며 “양사 통합에 따른 소비자 피해 가능성을 차단하면서 향후 우리나라 항공시장 경쟁시스템이 유지·강화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도록 조치를 취했다”고 말했다.

이어 “공정위 조치가 잘 이행될 수 있도록 항공당국과 긴밀히 협업하는 한편,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이행상황을 면밀히 점검하고 확인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 “빅딜 맞나?”···통합 후 시너지 효과 악화 우려도

이번 공정위 조건부 승인에 대해 업계에선 국내 항공산업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당초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에 따라 세계 7위급의 초대형항공사가 탄생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으나, 슬롯 및 운수권 이전 의무화 꼬리표가 붙으며 예상보다 시너지 효과가 적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경쟁제한성이 높다고 판단한 노선의 경우 그만큼 수익이 높다는 의미기도 하다. 특히 유럽, 미주 노선의 경우 국적 항공사 중에선 띄울 수 있는 곳이 적어 경쟁이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높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 통합 후 연간 3000억~4000억원의 시너지 효과가 날 것으로 기대했다.

저비용항공사(LCC) 대부분 동남아, 일본 노선에서 수익을 내고 있는 반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는 미국, 유럽, 중국 노선 매출 비중이 상당하다.

코로나19 사태 직전인 2019년 기준 노선별 매출을 살펴보면 대한항공은 미주 29%, 유럽 19%로 매출의 절반가량을 차지했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2019년 4분기 기준 미주 19%, 유럽 15% 수준이다.

아직까지 국내 LCC가 중장거리 노선 운항 확대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자칫 외항사 비중이 늘어 국내 항공산업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 2019년 외항사 수송객은 2998만9400명으로 전년대비 10.4% 늘었으며 전체 수송객(9038만6000명)의 약 33.17%를 차지했다. 반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국제선 점유율은 지난 2014년 55% 수준에서 꾸준히 하락해 2019년에는 37% 수준까지 떨어졌다.

특히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미국과 유럽 노선의 경우, 지난 2019년 기준 외항사 비중은 각각 27%, 41%로 집계됐다. 이번 공정위 결정으로 일부 운수권 및 슬롯이 이전돼 외항사에 넘어갈 경우 외항사 점유율은 더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중장거리 노선의 경우 환승 수요가 중요한데, 운수권과 슬롯을 반납하게 될 경우 해당 노선 뿐 아니라 연계되는 다른 노선에도 영향을 미쳐 통합 시너지 효과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 “항공산업 이해력 부족했나”···반쪽자리 정책 비판도

공정위가 양사 통합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당초 제시한 조치 수준을 보면 항공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행태적 조치 관련 부분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이 많았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당초 ‘노선별 공급 좌석수를 2019년 공급 좌석수 미만으로 축소 금지한다’는 조항을 달았는데, 대한항공 요청에 따라 ‘2019년 공급 좌석수 대비 일정 비율 미만’이라고 일부 문구를 수정했다. 항공기별로 공급 좌석수가 차이가 있는데, 공급량을 의무 설정할 시 기재 변경이 불가능해 노선 다양화 및 신규 기재 도입 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운임인상 금지 조치의 경우 공정위는 분기별·클래스별 평균 운임을 2019년 대비 물가지수 상승률 이내로 제한할 것을 지시했다. 하지만 코로나19 대비 수요와 공급이 모두 급감한 상황에서 2019년 운임을 현 상황에 적용할 경우 시장 왜곡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중장거리 노선의 경우 비즈니스 수요 및 상용 수요가 대부분이라 평균 운임은 41%가량 올라간 상태다. 이에 공정위는 시정조치는 유지하되, 2019년 기준 수요가 회복되지 않을 경우 의무 내용을 조정할 수 있다는 조건을 달았다.

업계 관계자는 “항공산업은 외생변수에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시의적절한 대응이 필요하나, 10년이라는 제약과 이행감시위원회 존재는 항공사 경영자율성을 떨어뜨릴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공정위는 양사 슬롯 및 운수권을 재배분 시 신규 항공사의 진입을 기대한다고 밝혔는데, 현실적으로 외항사가 아닌 국내 LCC가 이를 가져갈 가능성은 낮다는 의견도 있다.

통합 항공사를 제외하면 현재 국적항공사는 제주항공, 티웨이항공, 이스타항공, 플라이강원, 에어로케이, 에어프레미아 등 6곳이다. 이 중 중장거리 노선 취항이 가능한 곳은 현재 티웨이항공과 에어프레미아 뿐이다. 하지만 두 항공사 모두 중장거리용 항공기 대수가 적어 신규 취항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일반적으로 항공기의 경우 중간에 고장이 날 때를 대비해 대체 항공편을 준비해야 하는데, 10대도 되지 않는 항공기로는 즉각 대응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장거리 노선의 경우 대형 항공사들도 대체편 투입에 하루 이상이 걸리기도 하는데, 항공기 숫자가 부족하면 시간이 더 걸릴 수 밖에 없다.

◇ 해외 경쟁당국 심사는?

공정위가 양사 기업결합을 승인하면서, 해외 경쟁당국 심사도 조만간 결론이 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심사가 남은 곳은 미국, 영국, 호주, EU(유럽연합), 일본, 중국 등 6개국이다. 가장 큰 산은 EU다. EU는 최근 기업결합심사에서 독과점 요수가 있을 경우 승인을 불허하는 조치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앞서 지난해 EU는 캐나다 1, 3위 항공사인 에어캐나다와 에어트랜젯 합병을 불허했으며, 최근 한국조선해양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도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시장을 두 회사가 독점할 수 있다는 우려에 승인하지 않았다.

다만 업계선 공정위가 선제적으로 독점을 완화할 수 있는 강력한 규제 방안을 내놓았고, 양사 통합이 LNG선과 같이 글로벌 독점 우려가 큰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승인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공정위도 이날 브리핑을 통해 “조선 건의 경우 전세계 1, 2위 업체간 결합이었으며, 결합으로 영향을 받는 대부분 수요자가 유럽에 있었다. 하지만 항공은 대부분 우리 국민이 해외로 나가는 아웃바운드 수요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대한항공은 공정위 결정을 수용하고 EU를 비롯해 심사가 남은 나머지 경쟁 당국과 적극 협조, 조속한 시일 내 절차를 마무리해 아시아나항공 인수 절차를 마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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