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CDMO 기업 세계적 경쟁력
이중 규제 등 제도 비효율 발목
국회, 특별법 입법 논의 서둘러야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대한민국은 제조업 강국이다. 생산 규모 세계 5위 수준에 국내총생산 대비 비중은 2023년 기준 27.6%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보다 10%포인트 이상 높다. 바이오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롯데바이오로직스 등 주요 위탁개발생산 기업들은 백신 생산부터 항체, 세포 기반 의약품 제조까지 세계적 수준의 공정 역량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단, 제도적 기반은 기업의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심사나 원료수입 지연 등 불필요한 규제가 바이오 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국회에 제출된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 기업 규제지원 특별법안은 이러한 정책 리스크를 해소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행 규제 체계는 위탁개발생산 산업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글로벌 제약사가 요구하는 기준은 각국 규제기관의 승인 요건이다. 국내 유통을 전제로 한 허가 절차와는 다른다. 하지만 국내 위탁개발생산 기업은 해외 기준을 충족하고도 별도의 국내 절차를 다시 거쳐야 한다. 개발 속도를 늦추고 비용만 늘리는 이중 규제다. 법안이 제안한 수출제조업 등록제는 이런 비효율을 줄이고 글로벌 기준 중심의 생산 체계로 전환할 수 있게 한다.
품질관리 시스템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 품질관리 기준은 고시, 지침 수준에 머물러 법적 강제력이 약하다. 글로벌 제약사가 생산을 맡기기 위해선 신뢰 가능한 규제 체계가 필수적이다. 국내 기준이 법률로 명확히 뒷받침되지 않으면 우리 기업은 국제 무대에서 설명할 근거가 부족해진다. 위탁개발생산은 기술력 뿐 아니라 규제 신뢰까지 함께 수출하는 산업이다. 제도적 기반 마련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조건이다.
지속 성장을 위해 공급망 강화도 필수다. 현재 의약품 원료물질 상당 부분은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구조에서는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릴 때 생산 일정 자체가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법안에 원료 제조, 품질 인증 체계를 담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순 산업 육성 차원을 넘어 국가적 대응 전략과도 연결된다.
연초 발의된 법안은 그간 정쟁에 밀려 있었으나 최근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결되며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특별법안이 완벽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약사법과의 충돌 가능성, 규제 중복 문제, 기관 지정의 적절성 등 보완해야 할 과제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시행 과정에서 충분히 조정할 수 있다.
세계는 이미 공급망 주도권을 위해 바이오 생산 기반을 확충하고 있다. 미국은 칩스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생산 인프라 유치를 강화하고 있다. 유럽은 바이오 전략을 국가 경제의 핵심으로 다루고 있고 중국은 대규모 투자를 통해 저가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우리나라만 규제 불확실성으로 발목을 잡힌다면 글로벌 위탁개발생산 시장에서 주도권을 잃을 수밖에 없다.
이제 산업의 발걸음에 맞춰 제도적 기반을 정비해야 한다. 위탁개발생산 특별법은 우리나라가 글로벌 핵심 바이오 생산 국가로 자리잡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반 법안이다. 조속한 본회의 통과로 법안에 담긴 정책 효과가 하루빨리 산업 현장에 안착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