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에즈 정상화 기대에 글로벌 운임 ‘추락’
‘톤마일 효과’ 소멸에 공급 과잉 우려 확대
HMM 유럽 노선 의존도 높아 충격 더 커
4분기·내년까지 실적 악화 지속 전망

HMM의 2만4000TEU급 컨테이너 1호 ‘HMM알헤시라스호’. /사진=HMM
HMM의 2만4000TEU급 컨테이너 1호 ‘HMM알헤시라스호’. /사진=HMM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가자전쟁이 휴전 국면에 접어들며 막혀 있던 홍해~수에즈 항로가 다시 열릴 가능성이 커지자 글로벌 해상운임이 빠르게 식고 있다. 공급 과잉이 누적된 가운데 ‘톤마일 효과’마저 사라질 조짐을 보이면서 해운 시황은 다시 하락 사이클로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산업계는 물류비 부담이 완화될 것으로 보지만, 유럽 노선 비중이 큰 HMM은 운임 추가 하락이 곧바로 실적 악화로 이어지는 구조여서 이번 휴전이 실적에 ‘직격탄’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관세 충격에 HMM 실적 ‘급락’

18일 업계에 따르면 HMM은 올해 3분기 매출 2조7064억원, 영업이익 2986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3조5520억원) 대비 23.8% 줄고 영업이익(1조4614억원)은 79.7% 줄었다. 

올해 3분기 HMM 실적을 흔든 가장 큰 요인은 ‘관세’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각국을 상대로 고율 관세를 잇달아 발표하면서 글로벌 화주들은 2023년 3분기까지 물량을 앞당겨 실어 나르는 조기 선적 효과를 만들었다. 그 결과 지난해 3분기 HMM의 영업이익은 1조4614억원으로 분기 기준 역대 세 번째 수준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올해 3분기는 정반대였다. 미국의 관세정책이 적용되자 화주들의 재고 전략이 급격히 바뀌면서 HMM의 유럽·미주 물동량은 눈에 띄게 줄었다.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 관세 리스크 뒤엔···수에즈 운하 열리며 운임 하락 전망 

관세 충격이 일단락된 뒤에는 운임 하락이 HMM 실적의 발목을 잡는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글로벌 운임 지표는 가자지구 휴전 합의와 수에즈 운하가 정상화될 것이란 기대감에 뚜렷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영국 해운조사업체 드루리가 집계한 세계컨테이너운임지수(WCI)는 지난주 40피트 컨테이너당 1651달러로 전주 대비 1.0%, 한 달 전 대비 31.8% 급락했다.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도 지난 14일 1451.38포인트를 기록하며 지난 7월5일(3733.80포인드) 대비 절반 이하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관세 충격으로 왜곡됐던 물동량이 정상화되는 가운데 가자 휴전과 수에즈 정상화 기대가 맞물리며 운임 하락 압력이 구조적으로 커졌다는 해석이다.

수에즈 운하는 전쟁 전까지 유럽 물동량의 핵심 통로였다. 전 세계 해운 물동량의 약 12%, 컨테이너 교역 기준으로는 25~30%가 이 항로를 통과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액화천연가스(LNG), 원유 운반선도 이 항로를 통과한다. 그러나 후티 반군의 공격으로 항로가 사실상 막히자 글로벌 선사들은 아프리카 희망봉을 우회할 수밖에 없었고 운항 시간은 최대 2주 이상 연장됐다. 

우회 항로는 자연스럽게 선복을 묶어두며 ‘톤마일 증가’라는 공급 축소 효과를 만들었다. 코로나19 이후 정상화될 것으로 보였던 해운 운임이 다시 상승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하지만 최근 휴전 합의가 가시화되면서 상황은 다시 반전되고 있다. 희망봉을 우회하는 비정상적 운항 구조가 해소되면 선복 효율이 즉각 개선되고 공급량이 빠르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업계는 수에즈 운하의 완전 정상화 시 톤마일이 약 11%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같은 선대 규모라도 이동 거리가 단축되면 선박 한 척이 실어 나를 수 있는 화물량이 늘어나면서 공급 과잉이 구조적으로 심화되는 방식이다.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 더 어려워지는 업황…“연평균 6% 공급 증가”

핵심 공급망의 길목이 뚫리면서 산업계는 물류비를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는 반면 해운사들은 운임 하락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HMM의 4분기 전망은 더 어둡다. 전통적으로 3분기가 연말 성수기 출하 물량이 반영되는 ‘선행 성수기’라면 4분기는 비수기로 업황이 자연스럽게 꺾이는 시기다. 관세 충격과 운임 하락이 동시에 나타난 3분기보다 개선 여지가 제한적이라는 얘기다. 

최지운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HMM의 4분기 영업이익을 전년 대비 80% 감소한 2024억원으로 전망했다. 특히 최 연구원은 수에즈 운하 정상화가 본격화할 경우 ‘톤마일 축소→공급 증가→운임 하락‘ 구조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최 연구원은 “2~3년간 연평균 6% 안팎의 공급 증가가 예상되는 가운데 정상 항로 복귀는 추가 공급 확대 요인으로 작용한다”면서 “국제해사기구(IMO) 탄소세 부과 연기까지 겹쳐 노후선 폐선 압력이 약해져 공급 축소 속도가 늦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iM증권도 HMM 4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를 2250억원으로 추정하는 등 비슷한 전망을 내놨다.

HMM은 항로 조정·특수화물 확대 등으로 수익성 방어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HMM 관계자는 “기항지 재배치와 선박 투입 최적화를 통해 운항 효율을 높이고 냉동·대형 화물 등 고수익 화물 비중을 확대해 신규 영업 구간을 개척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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