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파기환송 이후 자사우대 입증 기준 급격히 강화
공정위 제재, 배민 사건 ‘실증 입증 부담’ 시험대로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배달의민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이 자사 배달서비스 ‘배민배달’을 우선 이용하도록 시스템을 설계했다는 혐의로 제재 절차에 들어갔다. 문제는 플랫폼 자사우대 규제를 평가하는 기준이 최근 네이버쇼핑 사건 대법원 파기환송을 계기로 한층 강화된 상황이라는 점이다. 입증 문턱이 높아진 만큼 공정위가 어떤 논리와 자료를 기반으로 배민 제재를 밀어붙일지, 그리고 그 논리가 사후 재판에서도 통할지가 관전 포인트로 떠올랐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최근 우아한형제들에 자사우대 혐의를 적시한 심사보고서를 전달했다. 공정위는 배민이 ▲저가 정액제 ‘울트라콜’ 폐지 ▲배달방식 선택 구조 변경 ▲‘가장 빠른 배달’ 문구 노출 등을 통해 가게배달보다 배민배달을 상대적으로 유리하게 만들었다고 보고 있다. 이 같은 변화가 음식점 선택권을 제한하고 경쟁 배달대행업체의 시장 접근성을 낮췄다는 게 공정위 판단이다. 우아한형제들은 의견서를 조만간 제출할 예정이며 제재 여부는 이후 결정된다.
◇대법 “시장지배적 사업자라도 동등 대우 의무 없다”···핵심은 ‘실증 입증’
배민 사건은 규제 기준이 최근 대법원 네이버쇼핑 판결로 재정립된 이후 처음 적용되는 대형 플랫폼 사건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지난달 16일 대법원 2부는 네이버쇼핑 사건에서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자사·입점업체를 동등하게 대우해야 할 법적 의무가 현행 법령에서 바로 도출되지는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는 자사우대 자체를 합법으로 본다는 취지가 아니라, 자사우대가 위법이 되려면 ▲경쟁제한 효과 ▲소비자 오인 가능성 ▲실제 피해 등을 공정위가 정량·정성적으로 실증해야 한다는 점을 더욱 명확히 한 판결로 평가된다.
대법원이 강조한 ‘실증 입증’ 기준은 자연스럽게 공정위 부담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현행 공정거래법에는 ‘자사우대 금지’가 명시된 독립 조항이 없다. 공정위는 그동안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제5조) 또는 일반 불공정거래행위(제23조)를 활용해 자사우대를 포섭해 규율해 왔다. 사건 명칭은 ‘자사우대’지만 실제 적용되는 법리는 부당한 고객유인·경쟁사업자 배제·사업활동 방해 등 기존 조항의 해석에 기반한다.
◇쿠팡 소송에서 먼저 불붙은 잣대···배민도 동일 프레임
쿠팡(과징금 1600억원)의 취소 소송에서도 동일한 쟁점이 부상하고 있다. 공정위는 쿠팡이 PB상품 노출을 인위적으로 높이고 직원 리뷰를 활용해 소비자를 유인했다고 주장하지만, 쿠팡은 글로벌 오픈마켓의 일반적 배치 기준이며 경쟁제한성 입증이 부족하다고 반박한다. 최근 변론기일에서 재판부가 네이버 파기환송 판례를 직접 언급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실증적 효과’ 입증 여부가 재판의 핵심 요소가 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배민 사건 역시 같은 법적 프레임에서 판단될 가능성이 크다. 공정위가 문제 삼는 ‘배민배달 중심 노출 구조’가 ▲경쟁 배달대행업체의 시장 접근성을 실질적으로 제한했는지 ▲입점 음식점 선택권을 축소했는지 ▲수수료 부담 증가로 이어졌는지가 핵심 평가 요소가 될 전망이다. 단순한 앱 개편이나 서비스 정책 변경만으로는 위법성이 인정되기 어렵고, 구조 변화가 시장에 실제로 영향을 미쳤다는 정량적 자료가 반드시 필요하다.
공정거래 분쟁 전문가 장품 변호사(법무법인 지평)는 “대법원 판결은 규제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입증 수준을 한 단계 높여놓은 것”이라며 “공정위 심의 과정에서도 네이버 판결이 반복적으로 언급될 것이고, 재판 단계에서도 동일한 기준이 적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공정위는 기존 방식대로 판단할 가능성이 높지만, 법원은 대법원 기준을 그대로 들여다볼 것이기 때문에 실증 자료 확보가 제재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경쟁법 전문 변호사 역시 “배민 사건도 기존 포섭 규제 체계를 유지하되 경쟁제한성과 기만성을 정량·정성적으로 입증해야 하는 부담이 분명히 커졌다”며 “입증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네이버 사건처럼 법원 단계에서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입증하려면 알고리즘 접근권 필요···현행 구조에선 사실상 불가능”
시민단체들은 네이버 판결이 ‘입증 기준은 높였지만 알고리즘 접근은 막아 둔’ 구조적 모순을 남겼다고 지적한다. 참여연대는 이날 국회 토론회에서 “대법원이 플랫폼 사업자의 광범위한 재량권을 인정했지만 알고리즘은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사실상 접근이 불가능하다”며 “별도의 법제화 없이 자사우대 위법성을 실증적으로 입증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어렵다”고 주장했다. 한국법제연구원은 “검색 알고리즘 조작은 소비자 선택을 왜곡하는 중대한 사안인데, 대법원은 네이버의 기준 공개만으로 기만성이 낮다고 본 점이 문제”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