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출·주가는 우상향인데 환율은 상승해
환율은 예측할 대상이 아니라 관리해야 할 위험
전체 자산의 10% 달러로 보유하는 것이 현실적

[시사저널e=강동희 신한 Premier PWM 강남센터 팀장] 올해 원·달러 환율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예측하라는 걸까?”

6월까지만 해도 1350원을 향해 내려앉던 환율은 불과 몇 달 만에 1460원대로 치솟았다. 그 사이 한국 증시는 사상 최고치에 근접했고, 반도체와 자동차 수출은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다. 경상수지는 20개월 넘게 흑자였다. 그럼에도 원화는 약해졌고 달러는 강해졌다.

교과서가 가르쳐준 그림과 현실의 차이는 올해만큼 선명했던 적이 드물다.

이 괴리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소환되는 이름이 있다. 바로 리처드 미즈와 케네스 로고프다. 두 경제학자는 40년 전 “합리적으로 만들 수 있는 어떤 환율 모델도 ‘내일의 환율은 오늘과 비슷할 것’이라는 단순한 랜덤워크보다 예측력이 높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이후 ‘미즈–로고프 퍼즐’은 환율 시장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일종의 냉정한 경고처럼 기능해 왔다.

예측하려 들수록 환율은 우리를 비웃는다. 

IMF의 여러 연구도 같은 맥락이다. “환율 예측이 매우 어렵다”는 사실이 경제학에서 드물게 합의에 가까운 영역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환율은 경제 지표처럼 움직일 것 같지만, 막상 시장에서는 종종 ‘우연에 가까운 궤적’을 그린다.

올해 한국 원화가 그랬다. 수출 회복, 경상수지 흑자, 주가 반등 등 강한 펀더멘털에도 원화가 약세를 벗어나지 못한 이유는 단순하다. 환율은 어느 한 가지 지표의 함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무역수지는 기본 체력일 뿐, 시장을 움직이는 건 금리 차이, 글로벌 자본 흐름, 지정학 리스크, 투자 심리까지 얽힌 복합적인 힘이다.

특히 올해는 두 가지 요인이 더 컸다. 

하나는 미국 금리와 채권시장이다. 미국 10년물 금리가 4%대를 고착화하며 “달러의 매력”을 강화했다. 다른 하나는 한국 개인투자자의 해외투자 열풍이다. 미국 주식과 해외 ETF로 향하는 달러 수요가 무역수지 흑자를 뛰어넘는 달도 있었다.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보다 투자로 외화가 더 많이 빠져나간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원화 강세를 기대한다는 것은 시장의 다른 절반을 보지 않은 셈이다.

결국 환율은 경제 + 자본 + 심리 + 정치가 동시에 작용하는 ‘복합적 결과’다. 그래서 '이제는 원화 강세다', '달러는 끝났다'는 식의 단정은 언제든 틀릴 준비를 해야 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정답은 단순하다. 예측이 아니라 대비다.

환율은 맞추는 대상이 아니라 관리해야 할 위험이다. 오히려 일정 비중을 달러로 보유하는 편이 훨씬 현실적일 수 있다. 전체 자산의 10% 안팎을 달러 예금, 달러 채권, 달러 ETF 같은 형태로 나눠 두는 것은 일종의 ‘보험’이며, 단기적인 환차익이 아니라 불확실성에 대한 방패에 가깝다.

특히 해외 유학비를 정기적으로 송금해야 하는 가정, 원자재를 달러로 결제하는 기업, 미국 주식에 장기 투자하는 개인이라면 더욱 그렇다. 환율이 급등할 때 허둥대지 않으려면, 환율을 생활 속 리스크 관리에 편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은행·증권사의 달러 적립식 서비스는 그런 면에서 꽤 실용적인 도구다.

앞으로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로 내려갈지, 1500원을 다시 넘어설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환율을 움직이는 힘보다 ‘우리의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환율 예측의 한계를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우리는 방향 맞히기 게임을 벗어나 더 현명한 자산 배분과 위험 관리에 집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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