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e=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최근 일각에서는 “미국이 이제는 원자력추진잠수함(SSN)을 줄이고 오르카(Orca) 같은 무인수중드론(UUV)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며, 한국의 원자력추진잠수함 건조를 비판하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기술적 사실과 전략적 현실을 오해한 것이다. 미국의 수중드론 개발은 결코 원잠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보조전력을 확보해 기존 체계를 보완하려는 노력에 가깝다.
무엇보다 수중드론은 통신과 지휘통제의 근본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다. 미국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다양한 무인수중체계(UUV)를 개발해왔으나, 수중 환경에서는 전파가 전달되지 않아 통신이 오직 음파(sonar)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음파는 전파보다 속도가 매우 느리고, 수온이나 염도, 밀도, 수심, 해저 지형 등에 따라 신호가 쉽게 왜곡된다. 이런 환경에서는 장거리 작전 중 지휘통제가 끊기거나 장비를 영구히 분실할 가능성이 크다. 공중의 무인기(UAV)나 수상 무인정(USV)처럼 위성 기반 실시간 통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수중드론은 사전에 입력된 임무를 일정한 경로로 단독 수행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미 해군이 개발 중인 오르카(XLUUV)조차도 실시간 명령 수신이 어렵고, 전투 상황에서 즉각적인 판단과 대응이 불가능하다. 결국 현 단계의 기술로는 전략적 억제, 장거리 잠항, 정밀타격 같은 원자력추진잠수함의 핵심 임무를 수행하기 어렵다. ‘수중드론이 곧 유인잠수함을 대체할 것’이라는 주장은 기술적 낙관론에 불과하다.
또한 잠수함 전투는 보이지 않는 심해에서 이루어지는 고도의 판단전이다. 표적 식별 과정에서 한순간의 착오가 발생하면 아군 함정이나 민간 선박을 공격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인간의 판단이 개입되지 않은 자율무기는 근본적으로 전쟁의 통제와 법적 책임이라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잠수함의 함장은 잠망경, 음탐기, 전자전 센서 등으로 수집한 정보를 종합해 최종 결심을 내린다. 이 결심은 단순한 기술적 판단이 아니라, 인간의 도덕적·법적 책임을 수반하는 행위다.
오늘날 AI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고 있지만, 국제사회는 여전히 ‘인간 통제(Human-in-the-loop)’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인간의 판단 없이 자율무기가 치명적 공격을 수행하는 것은 국제법상 금지되어 있다. 따라서 인간의 통제를 배제한 수중무인체계는 아직 완전한 전투자산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이와 더불어 미국이 원자력추진잠수함 건조를 축소하고 있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현재 미 해군은 버지니아급(Virginia-class) 공격원잠을 연간 두 척씩 꾸준히 건조 중이며, 차세대 전략원잠인 컬럼비아급(Columbia-class) 12척 프로그램은 2080년대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미 의회 역시 최근 국방수권법(NDAA)에서 원잠 건조 예산을 증액했고, 반대로 오르카 수중드론 관련 예산은 일부 삭감했다.
나아가 영국과 호주와 함께 추진 중인 ‘AUKUS 체제’의 핵심 또한 차세대 원자력추진잠수함(SSN-AUKUS) 공동개발이다. 이는 미국이 원잠 건조를 중단하거나 축소할 의도가 없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오히려 수중드론은 해저감시, 기뢰탐색, 정보수집 등 제한적 보조임무에 투입되는 보완전력일 뿐이다. 원잠이 수행하는 전략억제와 대양작전의 역할을 대신할 수는 없다.
결국 원자력추진잠수함과 수중드론은 대체 관계가 아니라 보완 관계이다. 원잠은 장기간 잠항과 원해작전, 전략억제, 정밀타격 등 국가 핵심 전력의 중심축으로서 작동하고, 수중드론은 제한된 범위 내에서 감시·정찰과 정보수집 임무를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미국이 수중드론 개발을 병행하는 이유도 해저감시망을 강화하고 유인잠수함의 작전 효율을 높이기 위한 것이지, 유인잠수함을 포기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미국이 수중드론으로 전환하니 한국도 원잠을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은 기술적 사실에도, 전략적 판단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은 미국과 영국처럼 유인 원자력추진잠수함을 중심으로 하면서, 무인체계와의 복합 운용능력을 함께 발전시켜야 한다.
21세기의 해양안보 경쟁은 ‘대체의 시대’가 아니라 ‘융합의 시대’다. 사람의 판단과 기술의 결합, 유인과 무인의 조화 속에서만 진정한 해양강국의 길이 열린다. 원자력추진잠수함은 그 중심에서 여전히 국가의 전략적 생존을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방패다.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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