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e=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21세기 한반도 안보 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하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미·중 패권 경쟁, 러시아와 중국의 전략적 밀착은 한국 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 국제 질서 속에서 대한민국이 생존하고 발전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주국방이다. 그러나 자주국방은 단순히 무기나 군사력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 구성원 모두의 의지와 단결, 특히 지도층과 국민의 대동단결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자주국방은 외부 지원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안보를 지킬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는 군사력뿐 아니라 경제력, 기술력, 산업 역량, 인구·자원, 정치적 안정성까지 포괄하는 복합 개념이다. 강력한 군사력과 우수한 산업 기반, 과학기술 발전, 충분한 인구와 자원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도층과 국민의 대동단결이다. 첨단 무기와 자원이 풍부하더라도 국가 내부가 분열되고 지도층이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면 국방은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 군사력이 국가의 체력이라면 단결은 국가의 정신력이다. 정신력이 약하면 체력도 무용지물이 된다.
자주국방이 필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첫째, 안보 주권의 확보다. 한국은 오랫동안 미국의 확장억제(핵우산)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미국의 전략적 우선순위 변화나 정치적 불안정은 한국 안보를 흔들 수 있다. 따라서 동맹을 강화하면서도 독자적인 방위력을 갖춰야 한다. 일본이 미국과 협력하면서도 자체 방위력 강화를 추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둘째, 한반도 안보 불확실성에 대한 대비다. 북한은 핵무장과 미사일 능력을 강화하고 있고, 중국과 러시아는 한반도 정세에 적극 개입하고 있다. 미·중 갈등이 심화될수록 한반도는 강대국 충돌의 무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자주국방은 이러한 불확실성을 극복할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셋째, 경제와 방위산업 발전의 토대다. 자주국방은 군사력뿐 아니라 산업 경쟁력에도 직결된다. 무기를 수입하지 않고 자체 개발·생산할 경우 기술 자립, 고용 창출, 수출 확대가 가능하다. 실제로 한국의 K-방산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것은 자주국방 의지가 산업 성장으로 이어진 대표 사례다. 방산 수출은 단순한 경제적 성과를 넘어 외교적 영향력과 국제적 신뢰를 강화하는 수단이 된다. 국방이 곧 경제 성장과 외교 자산으로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주국방은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
역사는 대동단결이 무너졌을 때 국가가 얼마나 쉽게 패망하는지 보여준다. 고려 말 권문세족의 분열과 부패는 왜구와 외세의 침입에 무력하게 만들었다. 조선 말기의 당파 싸움과 국론 분열은 국권 상실로 이어졌다. 반면 임진왜란 시기 이순신 장군과 백성이 하나 되어 싸웠을 때, 압도적 열세 속에서도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오늘날도 다르지 않다. 강력한 무기와 동맹이 있어도 국민이 하나로 뭉치지 않으면 국가 안보는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자주국방을 위해 지도층은 책임 있는 리더십과 투명한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현재 멈춰 있던 전작권 전환 논의가 다시 추진되고 있다. 과거 정권에서 국론 분열의 빌미가 되었던 전작권 전환 추진 실태를 면밀히 점검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야 한다. 안보에는 여·야·정이 따로 없음을 인정하고 대의를 위해 합의할 때 정치가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다. 동시에 국민도 분열과 갈등을 극복하고 국가 안보의 주체로서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한다.
오늘날 한국은 경제와 군사력 모두 세계 상위권에 올라섰지만, 내부의 정치적 분열과 갈등이 심화된다면 그 힘은 쉽게 무력화될 수 있다. 자주국방은 탱크나 미사일보다 먼저, 국민과 지도층이 함께 “국가를 지키겠다”는 의지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자주국방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필수 조건이다.
자주국방의 근본은 무기나 기술이 아니라 지도층과 국민의 대동단결이다. 역사가 증명하듯 단결은 국방의 최후 보루다. 한국 사회가 진정으로 자주국방을 원한다면 내부 분열을 넘어 국가 안보를 위한 하나의 의지를 공유해야 한다. “강한 군대는 단결된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 단순한 진리를 되새기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 자주국방의 실현을 향한 첫걸음이다.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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