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무대서 젠슨황과 손잡은 정의선···‘AI 팩토리’ 산업 전환 선포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30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엔비디아의 그래픽카드(GPU) '지포스' 출시 25주년 행사에서 단상에 올라 인사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30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엔비디아의 그래픽카드(GPU) '지포스' 출시 25주년 행사에서 단상에 올라 인사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AI가 산업을 다시 설계하고 있다’는 말이 현실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지난달 30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엔비디아 그래픽카드(GPU) ‘지포스(GeForce)’ 출시 25주년 행사 무대에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등장하자 현장 플래시가 쏟아졌다. APEC CEO 서밋 참석차 방한한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직접 주도한 행사에서 두 사람은 현대차그룹의 AI 팩토리 구축 협력을 공식화했다. 협력의 핵심은 엔비디아 블랙웰 GPU 최대 5만장 공급으로, 현대차그룹이 단순한 자동차 제조업체를 넘어 모빌리티·로보틱스·제조 전반의 AI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선언이었다.

현대차가 제시하는 AI 팩토리는 단순한 클라우드 연동 프로젝트가 아니다. 공장 생산라인의 운영 데이터, 차량 주행 정보, 로봇 제어 신호 등을 하나의 산업형 AI 플랫폼으로 통합해 생산과 개발, 운영 전 과정을 실시간으로 연결·학습시키는 지능형 구조를 구현한다. 엔비디아의 GPU 공급은 이러한 학습과 추론을 공장·로봇·차량 단위로 확장시키는 기술적 토대가 된다. AI 팩토리는 현대차그룹이 확보한 대규모 산업 데이터를 실시간 분석 자산으로 전환해 제조 효율과 제품 품질, 자율주행 안정성까지 통합 관리하는 ‘피지컬 AI’ 생태계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5년의 궤적, 기술 중심으로 선회한 현대차

정의선 회장은 올해로 취임 5년을 맞았다. 그는 2018년 수석부회장 시절부터 전동화·로보틱스·항공모빌리티 전략을 직접 설계하며 그룹의 미래 포트폴리오를 구체화해왔다. 이 구상은 2020년 회장 취임 이후 본격화됐고, AI 팩토리 협력은 그 연장선에서 현실화된 결과물로 평가된다. 코로나19 사태와 글로벌 공급망 불안, 미·중 통상 갈등 등 변수 속에서도 그는 현대차그룹을 제조 중심에서 기술 중심으로 전환시키는 데 집중했다. 그 결과 2019년 세계 5위였던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도요타·폭스바겐과 함께 글로벌 3강 체제를 굳혔다. SUV·하이브리드 중심의 고부가 전략과 제네시스 브랜드 고급화가 맞물리며 체질 개선의 토대가 마련됐다.

정 회장은 로봇·수소·항공 모빌리티로 기술 생태계를 확장하며 성장의 다음 축을 준비하고 있다. 2018년 로보틱스랩 신설, 2021년 보스턴 다이내믹스 인수, 수소 브랜드 ‘HTWO’ 출범, 자율주행 합작사 모셔널, 미래 항공 모빌리티 기업 슈퍼널(Supernal) 설립으로 이어진 행보는 전동화 이후 산업 전반을 연결하는 ‘피지컬 혁신’ 전략으로 이어진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1일 경북 경주 소노캄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 주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위한 국빈만찬에 참석해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1일 경북 경주 소노캄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 주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위한 국빈만찬에 참석해 있다. / 사진=연합뉴스

◇순환출자 고리 해소 등 지배구조 혁신도 과제

AI 팩토리 협력이 기술혁신의 상징이라면, 정의선 회장의 다음 숙제는 지배구조 혁신이다. 기술 주도형 체제로의 전환이 성과를 내고 있지만, 그 성과를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적 안정성은 여전히 남은 과제로 지적된다.

현대차그룹은 여전히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를 안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지정 대기업집단 중 순환출자 구조를 유지하는 유일한 그룹으로 그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지배구조가 단순해질수록 시장 신뢰와 주주가치는 높아지지만, 현대차그룹의 복합적 지분 고리는 여전히 과거 재벌 구조의 잔재로 남아 있다.

해법은 부친 정몽구 명예회장이 보유한 지분 정리에 있다. 정 명예회장은 현대모비스 7.29%, 현대차 5.57%, 현대제철 11.81% 등의 지분을 들고 있다. 이 지분의 이전 방식에 따라 정의선 회장의 지배력은 달라진다. 특히 순환출자 정점인 현대모비스의 지분 확보는 그가 20%를 보유한 현대글로비스를 중심으로 한 지배구조 재편 시나리오와 맞물려 있다. 시장에선 글로비스 가치 제고와 모비스 지분 매입이 결합된 ‘2단계 승계 구도’가 현실화할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다만 지주사 전환에는 금산분리 원칙이 장애물로 지목된다. 지주사 체제에서는 현대캐피탈·현대카드 등 금융 계열사 보유가 불가능해 그룹 전반의 사업 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 이에 따라 순환출자 해소와 승계 절차를 병행하는 점진적 개편이 현실적 시나리오로 거론되고 있다.

밸류업 정책과 상법 개정으로 기업 지배구조 투명성 압력이 높아지는 시점에서 정의선 회장은 지배구조 투명성과 시장 신뢰로 연결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프로필]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주요 경력: 1970년생.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샌프란시스코대 경영학 석사(MBA). 1999년 현대자동차 입사. 2005년 기아 부사장. 2009년 현대자동차 부회장. 2018년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 2020년 10월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취임. 현대자동차·기아·현대모비스 등 주요 계열사 이사회 의장 겸직.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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