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관 사퇴·LH 사장 대기 속 발주 지연 우려
공급 속도전 흔들리며 현장 관망 확산
시장 불안 재점화 가능성 제기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정부의 주택공급 정책 컨트롤타워가 흔들리는 모양새다. ‘갭투자’ 논란으로 국토부 차관이 사퇴하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은 석 달째 사표가 수리되지 않은 채 대기 상태다. 정책 설계와 집행 라인이 동시에 공백이 생기며 공급 일정 차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차관 사퇴로 정책 리더십 타격

27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이상경 전 국토부 1차관은 부동산 관련 발언으로 여론의 집중 포화를 맞았다. 최근 유튜브 채널 방송에서 “집값이 안정되고 떨어지면 그 때 사면 된다”고 말해 실수요자 반감을 자극했다. 이어 배우자가 지난해 분당 소재 30억원대 아파트를 전세를 끼고 매입한 사실이 확인되며 ‘갭투자’ 의혹까지 불거졌다.

전세 끼고 집을 사 이른바 '갭투자' 논란에 휩싸인 이상경 전 국토교통부 1차관이 지난 23일 국토부 유튜브 계정을 통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 사진=국토교통부 유튜브 캡쳐
전세 끼고 집을 사 이른바 '갭투자' 논란에 휩싸인 이상경 전 국토교통부 1차관이 지난 23일 국토부 유튜브 계정을 통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 사진=국토교통부 유튜브 캡쳐

부동산 자산을 많이 보유한 고위 공직자의 발언이라는 점에서 ‘내로남불’ 논란이 확대됐다. 결국 사과에도 불구하고 성난 민심을 진정시키지 못한 채 사퇴했다. 사의 표명 하루 만에 대통령이 면직안을 재가한 건 부동산 민심 악화에 대응하기 위한 신속한 조치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 LH 사장 공백 석 달째···공급 집행력 약화

문제는 리더십 공백이 국토부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한준 LH 사장은 지난 7월 사표를 제출했지만 여전히 수리되지 않은 상태다. 형식적인 직무 수행은 계속되고 있으나 대규모 공급사업의 결재와 인허가 절차에 있어 책임성과 추진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특히 LH는 정부의 ‘9·7 대책’ 이후 직접 시행 사업을 대폭 확대하고 수도권과 광역권 공급 계획에서 핵심 집행기관 역할을 맡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장 직무 불안정이 지속되면 공급 프로세스 전반에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사업 발주는 결국 책임자 결재가 필요한데 수장 교체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조직도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며 “사장이 확정되기 전까지 LH가 추진하는 사업 전반이 느려지는 건 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한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 지난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위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한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 지난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위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정부와 지자체 간 조율 실패도 문제다. 지난 10·15 대책에서 국토부는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부작용 우려를 전달했음에도 통보처럼 발표가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국토부는 “서울시도 협력 의사를 밝혔다”고 반박했다.

업계 관계자는 “정책 결정 과정의 소통 부재가 그대로 드러났다”며 “주택정책은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공동 역할이 필수이기 때문에 조율 기능이 흔들릴 경우 현장 추진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공급 지연 우려에 시장 불안 가중

시장에서는 공급 지연이 다시 가격을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금 서울과 수도권은 공급 기대가 집값 흐름을 좌우하고 있다. 그런데 인허가나 사업시행 승인 일정이 뒤로 밀릴 수 있다는 말이 현장에서 나오고 있다. 공급 불확실성이 커지면 ‘선매수 심리’까지 자극돼 시장 불안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정치적 부담 역시 상당하다.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주택공급 확대를 핵심 국정과제로 내세웠다. 공급 드라이브를 이끌던 인사들의 연쇄 공백은 정책 성과 창출에 직접적 장애 요인이 될 수 있다.

특히 내년 중요한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부동산 민심 악화는 정치적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당정이 연내 또는 내년 초 서울 지역 공급대책 발표를 예고한 상황에서도 정책 연속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리더십 공백을 조속히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권대중 한성대 일반대학원 경제부동산학과 석좌교수는 “공급사업은 인허가부터 착공까지 조정해야 할 변수가 많다”며 “결정권자 공백이 이어지면 현장 속도와 시장 신뢰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정책 연속성과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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