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덕트 프로모션·SGP 알고리즘 등 이용한 ‘제품 상위 노출’ 사실관계 인정
검찰 “알고리즘 자체로 소비자 기만” vs 쿠팡 “랭킹순은 내부 기준일 뿐”
공정위 과징금 1628억원 취소 행정소송 병행 중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쿠팡이 자체 브랜드(PB) 상품과 직매입 상품의 검색 순위를 인위적으로 조정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가운데, 첫 공판에서 “소비자를 속이거나 경쟁사 고객을 빼앗으려는 의도는 없었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서울동부지법 형사8부(이준석 판사)는 15일 오전 11시40분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쿠팡과 자회사 씨피엘비(CPLB)에 대한 첫 공판을 열었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쿠팡은 2016년 7월 도입한 ‘쿠팡랭킹순’ 기능을 통해 소비자에게 판매실적이나 사용자 선호도에 따라 자동 산출된 순위인 것처럼 표시하면서, 실제로는 자체 상품의 노출 순위를 인위적으로 상향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쿠팡이 2019년 3월부터 2024년 11월까지 총 5만1300개 상품을 16만6418회 상위에 고정했으며, 자회사 CPLB도 2019년 7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3209개 PB상품을 6만2141회 상위 고정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쿠팡은 ‘프로덕트 프로모션(Product Promotion)’이라는 내부 기능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기능은 운영자가 특정 상품을 지정해 자동 정렬 기준을 우회하고, 검색 결과 상단에 고정 배치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쿠팡은 이어 2020년 12월 ‘SGP 알고리즘’을 새로 도입해 일정 기준을 충족한 상품의 기본 점수를 최대 1.5배 가중시키는 방식으로 노출 순위를 자동 조정했다. 검찰은 이러한 ‘프로덕트 프로모션’과 ‘SGP 알고리즘’ 병행 운영이 모두 공정거래법상 위계에 의한 고객유인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쿠팡 “랭킹순은 내부 기준…전 세계적으로 유례 없는 형사기소”
이날 재판에서 검찰은 “SGP 알고리즘은 개별 상품을 직접 조작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상위 노출시키는 구조”라며 “이 알고리즘 자체를 이용한 행위가 소비자를 기만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쿠팡 측은 “일부 PB상품이나 직매입상품을 상위 노출한 사실은 인정하지만, 소비자를 속이거나 경쟁사의 고객을 빼앗으려는 고의는 없었다”고 반박했다. 변호인은 “쿠팡랭킹순은 객관적 서열이 아니라 소비자 선호와 검색 의도를 반영한 내부 기준이며, 상품 노출은 합리적인 진열 판단의 결과”라고 강조했다.
또한 “쿠팡이 소비자를 기만하거나 경쟁사업자의 고객을 유인했다는 전제 자체가 사실과 다르다”며 “이 사건처럼 내부 노출 기준을 문제 삼아 형사처벌을 시도한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공정거래법 제23조 제1항 제5호의 ‘부당하게 경쟁자의 고객을 유인하는 행위’라는 조항 안에 소비자 오인 가능성이 포함돼야 하는가”라고 물었고, 변호인은 “그렇다”며 “소비자가 실제로 속았다고 볼 여지가 없으면 죄가 성립할 수 없다”고 답했다. ‘소비자가 속았다는 객관적 정황이 있어야 불공정행위로 볼 수 있다’는 게 쿠팡 측 논리다.
재판부는 쿠팡 측의 증거의견을 받고 증인채택을 조율하기 위해 한 기일 속행하기로 했다. 또 동일한 사실관계로 서울고등법원에서 진행중인 1600억원대 과징금 행정소송의 경과도 함께 검토해 재판 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예고했다. 과징금 재판의 결론이 나올때까지 형사재판을 중단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보인다.
다음 공판기일은 12월12일 오전 11시20분으로 예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