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e=한승현 로완 대표이사] 우리는 흔히 치매를 ‘노화의 자연스러운 결과’ 혹은 ‘개인과 가족이 감당해야 할 숙명’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치매는 더 이상 개인의 문제에 머물러 있지 않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발표에 따르면, 미국 전체 의료비 지출의 약 90%가 만성 및 정신 질환 관리에 사용된다. 그 중에서도 치매와 같은 신경 퇴행성 질환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이렇듯 전 세계가 치매라는 거대한 그림자 속에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과연 우리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까. 현재 대부분 국가에서 시행 중인 치매 정책은 ‘돌봄(Care)’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치매 환자와 가족이 겪는 고통을 즉각적으로 완화하고 의료 및 요양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필수적인 조치다. 

물론 치매 진단을 받은 환자들을 위한 돌봄은 계속해서 확대되어야 할 중요한 영역이다. 하지만 단순히 병이 생긴 후에 대응하는 ‘사후약방문’식 정책만으로는 이 거대한 파도에 맞서기 어렵다. 

치매는 단순히 개인과 가정의 불행을 넘어 우리 사회 전체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협하는 중대한 도전이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노인 빈곤율이 가장 높은 한국의 현실과 맞물려 그 파장은 더욱 거대하게 다가온다.

국내 치매 관리 비용은 2025년 기준 이미 약 23조원에 달한다. 이 비용은 진료비와 약값 같은 직접 의료비는 물론 환자와 가족이 감당하는 간병 시간과 생산성 손실 등 보이지 않는 막대한 간접 비용까지 포함한 수치다. 이처럼 감당하기 힘든 비용은 사회적 안전망이 취약한 고령층에게는 치명적이다.

은퇴 후 충분한 자산을 축적하지 못한 고령층에게 치매와 같은 장기적이고 고비용의 질병은 곧바로 ‘가계 파산’의 위협이 된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데 드는 비용은 환자 한 명당 연간 약 3000만원에 달한다. 이는 의료비와 간병비, 간병에 따른 가족의 생산성 손실을 모두 포함한 금액이다. 만약 자녀가 월 300만원을 버는 직장인이라면 연간 3600만원의 수입 중 대부분을 부모의 치매 간병에 사용해야 할 수도 있다. 

이는 자녀의 삶을 파괴하는 것은 물론, 다음 세대의 삶까지 위협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OECD 최고 수준의 노인 빈곤율이라는 현실은 이러한 악순환을 더욱 가속화하는 요인이다.

‘치료’에서 ‘예방’으로 인식 패러다임 전환 필요

이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어떻게 하면 치매 환자의 삶을 더 편안하게 할 것인가?”를 넘어, “어떻게 하면 치매의 발병 자체를 늦추거나 예방할 것인가?”에 집중해야 한다. 다행히도 현대 의학은 치매가 더 이상 ‘예방 불가능한 영역’이 아님을 밝혀내고 있다.

치매는 단순히 기억력 감퇴를 넘어 고혈압, 당뇨와 같은 만성질환 관리, 규칙적인 신체 활동, 건강한 식단, 그리고 활발한 사회적 교류와 인지 훈련 등 다양한 생활 습관 요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최근에는 이러한 요인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개개인의 데이터를 분석해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는 디지털 기술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치매 예방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이러한 시도는 ‘사후약방문’이 아닌 ‘사전 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개인의 노력과 첨단 기술이 결합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따라서 치매 정책의 패러다임을 ‘돌봄’에서 ‘예방’으로 과감하게 전환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정부 예산의 배분을 바꾸는 것을 넘어, 우리 사회 전체의 인식을 바꾸는 작업이다. 

정부는 국민의 뇌 건강을 증진시키는 것을 핵심 목표로 삼고, 이를 위한 국가적 차원의 종합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릴 때부터 뇌 건강의 중요성을 교육하고, 노년층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지역사회 기반의 운동 및 인지 프로그램 예산을 대폭 확대하며, 만성질환 관리를 위한 보건 시스템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미래의 의료비를 절감하는 경제적 논리를 넘어선다. 치매를 예방하고 늦추는 것은 곧 환자 본인의 존엄성을 지키고 가족의 고통을 덜어주며, 더 활기차고 건강한 노년기를 보장하는 일이다.

치매는 우리 모두에게 닥칠 수 있는 미래다. 우리가 지금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미래 대한민국 사회의 모습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 이미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문제 발생 자체를 막는 것은 훨씬 더 강력한 힘을 가진다. 치매라는 무거운 그림자 속에서 벗어나, 밝은 미래를 위한 ‘예방의 빛’을 비추어야 할 때다.

 

한승현 로완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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