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에이치 르블랑·르베르·르피크·르블리스 등 강남권 ‘르’ 활용 단지명 눈길
삼성물산은 원베일리·원펜타스·원페를라·원마제스티·원팰리체 등 ‘원’ 적용
현대건설, 하이엔드 브랜드 내 서열화 추측에 “특별한 의도 없다” 일축

/ 표=정승아 디자이너
/ 표=정승아 디자이너

[시사저널e=노경은 기자] 현대건설이 최근 사업을 결정지은 아파트 단지 작명에는 공통점이 있다. 최상위 입지의 사업장에는 프랑스어 정관사 ‘르’(le)가 붙는 사례가 두드러지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프리미엄 브랜드 ‘디에이치’를 출시한 지 10년이 되면서 하이엔드 브랜드 적용 단지 내에서도 서열화 작업을 하는 차원으로 추측한다. 다만 현대건설은 가장 입지가 우수하다고 평가받는 사업장 가운데 ‘르’가 활용되지 않은 사례를 들며 ‘르’ 작명에 특별한 의도는 없다고 일축했다.

◇ 디에이치 ‘르’·래미안 ‘원’, 강남구·서초구·과천에만 있네

1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대건설이 내놓은 하이엔드 브랜드 디에이치를 선보인 지 올해로 만 10년이 됐다. 디에이치는 지난 2015년 론칭한 이후 다수의 하이엔드 브랜드 디에이치 단지를 준공했다. 또한 시공권 확보 과정에서 디에이치 적용을 약속한 단지도 늘었다.

최근에는 현대건설이 수주한 하이엔드 브랜드 디에이치 적용 사업장 가운데 단지명에 ‘르’가 들어가는 사례가 눈에 띈다. 올해 상반기 도급계약을 체결한 ▲디에이치 르블랑(서초구 신반포2차 재건축), 지난달 시공계약을 체결한 ▲디에이치 르베르(강남구 개포주공6·7차 재건축) 등이 그것이다. 이밖에 서울 서초구 방배삼호12·13동을 재건축한 ▲디에이치 르피크나 준강남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 ▲디에이치 르블리스(과천주공8,9단지) 등도 있다.

이들은 강남권(강남구, 서초구)이거나 준강남이라 불리는 과천 등 주택가격이 높은 지역 중 재개발을 제외한 재건축 현장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앞서 삼성물산도 유사한 작명 경향을 보인 바 있다. 자사가 시공한 강남권 고가입지의 단지에 ‘원’을 붙인 것이다. ▲래미안 원베일리(신반포3차·경남 통합재건축) ▲래미안 원펜타스(신반포15차 재건축) ▲래미안 원페를라(방배6구역 재건축) ▲래미안 원마제스티(과천주공10단지 재건축) ▲래미안 원팰리체(잠원강변 리모델링)가 그 예다.

‘원’을 마지막에 붙인 사례도 있다. ▲래미안 트리니원(반포주공3주구 재건축)과 지난달 수주한 ▲래미안 루미원(개포우성7차) 등이이에 해당한다. 현대건설과 마찬가지로 단지명에 ‘원’이 적용된 사업장은 강남구나 서초구, 과천시에만 위치한다.

당시 업계 일각에서는 삼성물산이 수주한 단지들의 급을 나눈 네이밍 전략으로 추측했다. 그러나 삼성물산은 유일무이함을 강조하다 보니 원이 붙었을 뿐이라며 부인했다. 이번 현대건설의 ‘르’ 작명 사례 역시 하이엔드 브랜드 내에서의 최상급 단지에 대한 서열화 작업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특히 한강벨트라는 이름이 붙여질 정도로 한남, 성수, 여의도 등에서 시공권 확보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됐지만 두 시공사 모두 정통 강남구, 서초구 내 재개발을 제외한 정비사업장에만 ‘르’와 ‘원’을 붙인 점도 눈길을 끈다.

◇ “하이엔드 단지 내 서열화 전략” 분석에···회사 측 “사실 아냐” 부인

현대건설이 디에이치를 론칭한 이후 대형 건설사는 물론 중견건설사까지 현대건설의 뒤를 이어 프리미엄 브랜드를 론칭할 정도로 시장에는 고급화 바람이 불었다. 대우건설의 써밋, 포스코이앤씨의 오티에르, 롯데건설의 르엘, SK에코플랜트의 드파인 등이 그 예다.

정비사업장에서는 하이엔드 브랜드를 적용 여부가 시공사 선정의 주요 결정요소가 됐다. 일부 조합은 입찰요건에 하이엔드 브랜드 적용을 내걸 정도로 고급화 바람은 확산됐다. 건설사 입장에서도 상징성, 수익성이 높은 단지의 수주 실패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하이엔드 브랜드 적용 요구를 외면할 수 없는 실정이 된 것이다.

다만 수도권과 지방을 가릴 것 없이 하이엔드 브랜드 단지가 등장하면서 브랜드의 희소성이 사라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기 시작했다. 입찰 조건으로 하이엔드 브랜드가 적용되지 않아도 사업성이 있는 단지를 수주하기 위해 건설사들이 하이엔드 브랜드 제안을 아끼지 않아서다.

이에 일각에서는 현대건설의 단지명에 ‘르’가 들어가는 것도 하이엔드 브랜드 내에서조차 서열을 부여하는 건설사의 고도의 마케팅 전략일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건설은 이 같은 추측은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작명에 ‘르’가 들어간 데 특별한 의도는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르’가 붙은 단지를 최신 상위 단지로 인식하는 세간의 평가는 여전하다. 디에이치 클래스트는 현대건설이 약 8년 전인 2017년 조합에 제안한 단지명이다. ‘르’가 붙은 단지명은 최근 1~2년 사이 부쩍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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