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무부, VEU 철회 대신 연간 허가제 검토
공장 확장 및 업그레이드용 장비반입은 제한
[시사저널e=고명훈 기자]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해 미국산 반도체 제조 장비의 중국 공장 반출을 조건부로 허용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그간 적용돼온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 명단에서 완전히 제외하는 대신 1년마다 한번씩 승인받도록 하는 연간 허가제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블룸버그통신은 7일(현지시간) 미국 상무부 소식통을 인용해 “한국 반도체 제조업체들에 이전에 적용됐던 무기한 허가 대신, 연간으로 승인받는 방안을 한국 정부에 제시했다”며, “내년 제한된 장비와 부품·소재의 정확한 수량을 제시해 미국 정부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방식”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이는 바이든 정부 시절의 면제 조치를 철회한 후 글로벌 전자 산업의 혼란을 막기 위한 타협안”이라고 덧붙였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중국 반도체 공장은 당초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의 VEU 명단에 포함돼왔다. VEU는 미국 상무부가 사전에 승인한 기업에만 지정된 품목의 수출을 허용하는 제도로, 반도체와 같은 특정 품목을 미국이 아닌 다른 국가의 특정 시설에 반입할 때 적용된다.
앞서 지난 2022년 10월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중국에서 사업을 유지할 수 있도록 이를 허용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 공장에서 미국산 장비와 부품을 가져올 때 별도의 개별 허가 없이 일정 수량의 장비를 장기간 반입할 수 있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로 들어오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지난달 말 미국 상무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중국 법인에 대한 VEU 지위를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한국 기업들은 이에 따라 120의 유예기간 이후 당장 올 연말 VEU 적용이 만료될 처지에 놓이게 됐다. 중국 공장에 미국산 장비를 반입할 때마다 개별 허가를 거쳐야 하는 부담이 생긴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기업들의 VEU 지위를 완전히 철회하는 대신 연간 승인제로 대체한단 계획이다. 이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 운영에 대한 리스크는 일부 해소되겠지만, 해마다 승인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행정적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에 각각 시안 공장과 우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시안 공장은 회사 낸드플래시 생산량의 약 35%를 차지하고 있으며, SK하이닉스의 우시 공장은 회사 D램 전체 생산량의 40%를 담당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의 경우 최근 시안 공장을 기존 V6(128단) 라인에서 V8(236단) 또는 V9(286단)으로 전환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 정부는 매년 장비 수출을 허용하더라도 중국 내 공장의 확장이나 선단공정 전환에 활용할 수 있는 첨단 장비 수출은 제한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매년 승인받을 때마다 미국 정부의 입장에 따라 또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른다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블룸버그는 “트럼프 행정부의 제안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1년치 장비와 부품, 소재에 대한 정확한 수량으로 승인을 받고자 하는 것”이라며, “설비의 업그레이드 혹은 생산능력 확장에 사용될 수 있는 장비의 운송은 승인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