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 및 책임자들 대법원서 벌금·징역형 집유 확정
노조 “처벌 한계 있어 개선 필요”···회사 “안전투자·예방 강화”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2020년 HD현대중공업에서 연달아 발생한 산업재해 사망사고 3건에 대한 형사책임을 묻는 재판이 14일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이번 판결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이어지는 산업재해를 막기 위한 구조적 개선과 원청 안전책임 강화 논의에 어떤 의미를 남길지 주목된다.
대법원 2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이날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현대중공업 법인과 부문장 2명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변론 상고기각 판결을 선고했다. 이로써 법인에 선고된 벌금 5000만원, 조선사업부 대표의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특수선사업부 대표의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이 각각 확정됐다.
이번 판결은 ▲2020년 2월 LNG선 트러스 조립 중 하청노동자 추락 사망(작업발판 미설치 및 안전난간 미비) ▲2020년 4월 수중함 발사관 도어 정렬작업 중 정규직 협착 사망(도어 안전센서 미작동) ▲2020년 5월 SUS 파이프 용접작업 중 하청노동자 아르곤가스 질식 사망(밀폐공간 환기·가스농도 점검 소홀) 등 3건의 사건을 병합해 심리한 결과다. 모두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전에 발생한 산업재해 사고다.
중대재해처벌법은 2022년 시행 이후 원청의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대폭 강화했다. 만약 이번 사건에 현행 법이 적용됐다면, 법정형 상한이 높아지고 원청 경영책임자의 처벌 가능성이 확대됐을 것이라는 게 법조계 설명이다. 이재명 정부도 최근 반복된 중대재해에 대해 건설면허 취소까지 검토하겠다고 밝히며 강경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법 시행 이전 발생한 사고로, 노조 측 요구와 달리 형량을 높이지 못한 채 끝이 났다. 노동계에서는 “제도 도입 이후에도 여전히 구조적 개선 없이는 반복사고를 막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김경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중대재해가 반복돼도 가중처벌이 전혀 없었다”며 “사업주가 비용을 들여 안전 개선을 할 유인이 없는 판결이다”고 비판했다. 그는 “빅도어 끼임사고 처럼 과거 동일 유형 사고가 재발했는데도 처벌이 약하고, 구조적 개선이 뒤따르지 않으니 사고가 되풀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안전 강화 의지를 보여도 위험의 외주화, 하청노동자에 대한 부실한 안전관리, 이주노동자의 언어 장벽 등 현장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재해는 막을 수 없다”며 “법의 목적은 처벌이 아니라 사전 예방에 있는 만큼, 강한 법이 있는 지금이야말로 위험요인 제거와 안전투자 확대가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조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임금·단체교섭에서 안전 인력 확충과 위험수당 확대를 더욱 강하게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 실장은 “현대중공업이 과거보다 안전 인원과 투자 규모를 늘린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미흡하다”고 덧붙였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앞으로 안타까운 사고가 재발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회사 측은 그간 협력사 대상 안전관리 지원과 설비 개선, 위험작업장 자동화, 안전교육 확대, 전담팀 운영 등 다양한 안전 조치를 시행해왔다. 노진율 사장은 지난 7월 HD현대 조선 계열사(HD현대중공업, HD현대미포, HD현대삼호, HD현대마린엔진, HD현대M&S) 사업장을 잇달아 방문해 각사의 안전경영시스템을 점검하고 생산 현장 안전지도를 진행했다.
HD현대중공업은 새로운 안전보건 경영체계인 ‘더 세이프 케어(The Safe Care)’를 오는 18일부터 전면 시행한다. ‘더 세이프 케어’는 추락, 끼임, 감전, 질식, 화재 등 9가지 핵심 위험 요소를 절대불가사고로 지정하고, 이를 중심으로 전사적 차원의 집중 관리를 실시하는 제도다. 회사 관계자는 "최근 중대재해 원천 차단을 목표로 새로운 안전보건 경영체계인 ‘The Safe Care’를 도입하는 등 근로자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안전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