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채무조정 기구 ‘배드뱅크’ 설립 준비 중
8월 중 배드뱅크 설립···10월부터 연체채권 매입 개시 목표
대손비용 증가에 순익 타격 입은 카드업계
“장기 연체차주 상환 유인 약화 우려”

주요 카드사 상반기 순익 추이/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주요 카드사 상반기 순익 추이/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시사저널e=김희진 기자] 올해 상반기 실적이 전년 대비 부진했던 카드업계가 하반기에도 반등의 기회를 잡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장기 연체채권 채무조정 기구, 일명 ‘배드뱅크’ 설립을 추진하면서 차주들의 상환 의지가 약화될 우려가 나오고 있는 탓이다. 채권 회수율 저하로 대손비용이 추가로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카드사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장기 연체채권 소각을 위한 배드뱅크 설립을 실무진 단위에서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월 ‘장기 연체채권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발표하고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산하에 채무조정 전담 기구를 설치하겠다고 밝힌 이후 본격적인 준비 작업에 돌입한 상태다.

캠코 역시 배드뱅크 설립을 통한 채무조정 프로그램에 드는 재원 분담 비율을 놓고 각 금융협회에 협상을 진행 중이다.

정부는 8월 중 연체채권의 매입·소각을 전담할 배드뱅크를 설립하고 10월부터 본격적인 채권 매입을 시작한다는 방침이다.

배드뱅크 설립 추진 소식에 카드사들은 긴장하고 있다. 채무 조정을 기대하는 장기 연체자들의 채권 회수가 더 어려워질 우려가 커진 탓이다.

이미 올해 상반기 카드사들은 대손비용 증가 영향으로 실적이 전반적으로 뒷걸음질 친 바 있다. 상반기 실적을 발표한 주요 카드사 6곳(신한·삼성·KB국민·현대·하나·우리카드)의 상반기 당기순이익은 1조1152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조3622억원)보다 18.1% 감소했다.

카드사별로 살펴보면 현대카드를 제외한 5개 카드사 모두 순익이 일제히 감소했다. 삼성카드는 올해 상반기 순익이 3356억원으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 상반기에도 신한카드를 제치고 카드사 중 최고 순이익을 기록했으나 전년 동기(3628억원)보다 7.5% 감소했다.

신한카드는 같은 기간 3793억원에서 2466억원으로 순익이 35.0% 줄어들며 6개 카드사 중 순익 감소 폭이 가장 컸다. KB국민카드의 순익도 지난해 상반기 2557억원에서 올해 상반기 1813억원으로 29.1% 줄었으며 하나카드와 우리카드도 각각 5.6%, 9.5%의 순익 감소세를 나타냈다.

실적 악화 배경에는 대손비용 증가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6개 카드사의 대손비용은 지난해 상반기 1조7597억원에서 올해 상반기 1조9453억원으로 10.5% 늘었다.

올해 상반기 실적이 이미 대손비용 부담 확대로 부진한 상황에서 배드뱅크 설립 추진은 카드사들의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 장기 연체채권을 대규모로 매입·탕감할 경우 일부 차주들이 상환을 미루거나 의도적으로 연체 상태를 유지하려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다. 카드사 입장에선 기존 채권 회수가 더 어려워지고 이는 연체율 상승으로 이어지게 된다. 결국 대손비용이 추가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카드사의 수익성과 건전성에 이중 부담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배드뱅크 도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장기 연체채권을 일괄 조정하는 방식이 자칫 채무자의 상환 유인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며 “연체율이 더 오르면 대손 관련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어 실적과 건전성 관리 모두에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