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오는 4일 전세사기 배드뱅크 간담회 소집
재원 마련 둘러싸고 금융권 내 분담 갈등 확대
저축은행·대부업 등 분담비율 두고 형평성 논란
일부 업권 부동산 PF 부실 리스크로 분담금 지급 부정적 입장
[시사저널e=김태영 기자] 정부가 전세사기 배드뱅크 설립을 공식 추진하면서 재원 마련을 둘러싸고 금융권 내 분담 갈등이 커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업권 간 자율 조정을 주문하고 있지만 은행을 비롯한 각 협회 간 이견이 커 합의에 난항을 겪고 있는 모습이다. 업권 내 자산규모 격차가 큰 저축은행, 대부업 등에서 분담비율을 두고 형평성 문제가 불거지고 있고 일부 업권은 분담금 지급 자체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치면서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오는 4일 전세사기 배드뱅크 의견 청취를 위한 간담회를 소집할 예정이다. 이날 금융위원회를 중심으로 금융감독원, 업권별 협회, 5대 시중은행(KB·신한·우리·하나·NH농협은행), 한국자산관리공사 등이 참석할 계획이다.
간담회는 정부가 추진 중인 전세사기 배드뱅크 설립 검토에 앞서 피해 주택의 선순위 근저당채권 현황과 관련한 금융권의 의견을 청취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현재는 피해 주택의 채권 구조 및 현황을 파악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고 설명했다.
전세사기 사안은 피해 규모가 크고 선순위·후순위 채권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등 구조가 고도화돼 있어 난이도가 높은 정책 과제로 평가된다. 가장 큰 문제는 자금 조달이다. 여당은 전세사기 배드뱅크의 규모를 약 1조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전세사기 중에서도 소액 임차인이 아니면서 선순위 채권이 있는 피해자가 전체의 절반을 차지했는데 이들의 선순위 채권액에 매입가 할인율을 적용해 산출한 금액이다.
운영 주체로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검토되고 있다. 다만 LH는 경·공매 절차가 마무리된 후 한 건씩 주택을 매입하는 방식이어서 피해 지원 속도와 규모 면에서 한계가 많다는 평가다. 실제로 지난달까지 LH가 매입한 피해 주택은 1043가구에 그쳤다. 금융당국은 정책 추진 속도를 높이기 위해 운영 주체로 부실채권 정리 경험이 풍부한 캠코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캠코는 이미 금융취약계층 채무조정을 위한 8000억원 규모의 빚 탕감 배드뱅크를 추진 중인 상황이다. 여기에 전세사기 구제까지 맡을 경우 이중으로 배드뱅크 운영 체계가 가동된다는 설명이다.
캠코 내부 재원을 활용한다고 해도 결국 그 재원은 금융사 출연금 또는 정부 재정 지원으로 구성되는 만큼 실질적 부담은 금융권에 전가될 공산이 크다. 소상공인과 서민 등을 위한 공적 금액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재원 마련을 위해 금융권이 팔 비틀기식 부담에 직면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은행권에서는 금융사의 정상적 자산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정부가 캠코 중심의 공적 배드뱅크를 통해 선순위 채권을 일괄 매입할 경우 할인율에 따라 시중은행 손실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장기연체채권은 원래 회수가 어려워 손실 처리돼 있던 자산이지만 전세 사기 주택은 담보로 잡힌 집이기 때문에 경매를 거치면 회수 가능성이 높은 자산"이라며 "정부가 시세보다 낮은 가격으로 채권 매입을 유도하면 배임 논란까지 불거질 수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분담 비율의 경우 업권 간 자율 협의를 통해 정하기로 했는데 금융권 내부 이견이 커 난항이 지속되고 있다. 앞서 당초 은행권이 4000억원을 모두 부담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기도 했지만 은행업권이 반발하면서 보험·저축은행·카드·금융투자·대부업권 등 전 업권이 함께 분담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바 있다.
하지만 저축은행의 경우 79개사에 달하는 등 업체 수가 많고 채권 보유 현황, 경영 여건 등을 감안하면 분담금을 낼 여력이 많지 않은 업체도 있다. 일부 업권은 분담금 지급자체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것으로도 알려졌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화 등으로 리스크 관리 부담이 커진 만큼 출연금을 내놓기가 어려운 실정이라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상당수 금융권들은 서민금융진흥원 출연 확대, 이차보전 정책 등으로 충분히 기여했다는 피로감이 누적돼 있다"며 "민간 금융사에 과도한 부담을 반복적으로 전가하는 것은 시장 기능을 왜곡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