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수집 장치 부재·글로벌 정합성 부족 지적
정부 “명확한 예시로 혼란 줄일 것”
[시사저널e=송주영 기자] AI기본법 시행이 약 반 년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정부 시행령 초안에 산업계와 학계가 반발하고 있다. 특히 ‘고영향 AI’의 모호한 기준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미국 등 주요국의 규제 사례를 살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30일 박민규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균형 잡힌 AI 생태계 조성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는 ‘책임감있는AI포럼’ 주관 아래 투명성 부재와 모호성, 글로벌 경쟁력 확보 문제 등 주요 쟁점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윤혜선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거버넌스의 핵심은 불확실한 위험을 관리하고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라며 “인공지능 기술, 서비스, 제품 등을 잘 모으고 잘 관리해 필요한 이해관계자에게 전달함으로써 적절한 대응을 적시에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인공지능 기본법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EU가 ‘AI 액트’를 통해 정부와 감독기관이 AI 시스템 정보를 서비스 사전이나 사후에 법적으로 보장한 것과 달리 우리나라 AI 기본법은 정보 수집 체계가 빠져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사업자의 설명 책임 조항은 있으나 정부가 일상적으로 서비스 정보를 직접 상시적으로 수집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미흡하단 시각이다.
공공 레지스트리 등록, 연례보고 제출, 수시 자료 요구 등의 법적 의무가 명확하지 않고 정부가 정보를 수집하거나 조사를 개시하려면 법 위반이나 신고 등 ‘사안이 발생했을 때’로 한정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법안의 모호성으로 인한 산업계의 우려도 크다. 시행령 초안은 사람의 생명, 신체, 기본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거나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AI(‘고영향 AI’)를 별도 규제 대상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에 단순한 위험 가능성만으로도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산업계에서 잇따르고 있다.
유재현 한양대학교 사회혁신융합전공 겸임교수는 “산업계에서 말한 것처럼 범주가 확대되고 서비스가 언제 규제에 포함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있다. 우리나라는 이런 불확실성으로 인해 대규모 자금이 이탈한 경험을 올해도 했다”며 “규제 방향을 명확하게 정의해 시장의 리스크를 낮추고 혁신을 시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경쟁력 확보의 필요성도 언급됐다. 우리나라가 AI 기술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시켜 국가 성장동력을 확보하려는 시점에서 규제 역시 글로벌 표준에 부합해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단 주장이다.
윤 교수는 “우리나라가 AI 기본법을 통해 한국형 AI 거버넌스를 제안한 측면에서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며 “전 세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안하고 그것이 글로벌 표준이 될 수 있도록 정합성을 갖춰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 교수도 “우리나라 AI 기술이 전 세계로 확장되려면 글로벌 서비스 시장이 열려 있어야 하고 국내 인력들이 우리나라에 머물면서도 글로벌 역량을 강화할 수 있어야 한다”며 “매우 빠르게 발전하는 시장에서 규제 모델은 세계적인 모델을 형성할 수 있는 기회”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향후 예시를 꼼꼼히 제공해 법 시행 시 업계의 혼란을 줄이겠다는 방침이다.
공진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인공지능기반정책과장은 “AI 기본법의 하위법령, 가이드라인, 고시 등을 마련하고 있으며, 초안이 나오면 의견수렴도 진행할 것”이라며 “하위법령은 AI 3대 강국이라는 비전을 담아 진흥 중심으로, 꼭 필요한 규제만 포함해 마련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고영향 AI, 투명성 확보 의무 등은 사업자의 오해나 혼란이 없도록 예시도 마련하고 기준을 명확히 하고 있다”며 “안내와 컨설팅도 준비하고 있다. 입법예고 전에 시민단체와 학계 의견을 수렴하고 함께 만들어 나가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