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인재개발원에서 이틀간 VCM 진행
[시사저널e=한다원 기자] 롯데그룹이 하반기 VCM(Value Creation Meeting·옛 사장단 회의)을 1박2일 일정으로 진행한다. 롯데가 이틀간 VCM을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어려운 사업 환경을 고려해 심도깊은 논의를 이어가겠단 의도로 읽힌다.
16일 롯데그룹에 따르면 회사는 이날부터 이틀간 경기 오산 롯데인재개발원에서 하반기 VCM을 연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주재하는 VCM엔 롯데지주 대표이사와 각 사업군 총괄 대표, 계열사 대표, 롯데지주 실장 등 주요 경영진 80여명이 참석한다. 롯데 VCM은 매년 상·하반기 두 번 열린다.
◇롯데인재개발원에서 이틀간 VCM 여는 이유
통상 롯데 VCM은 롯데월드타워에서 열었지만 이번엔 롯데인재개발원에서 진행된다. 앞서 2022년 상반기 롯데인재개발원에서 VCM이 열린 적은 있지만, 이는 롯데인재개발원의 리뉴얼 오픈을 위한 선택이었다.
유통업계 안팎에선 롯데가 회의를 이틀로 늘린 것은 곧 회사의 위기의식이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한다. 신동빈 회장은 올 상반기 VCM에서 현재 그룹이 놓인 어려움을 타파하고 대혁신의 전환점으로 삼을 수 있도록 고강도 쇄신을 주문했다.
신 회장은 “빠른 시간 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유형자산 매각, 자산 재평가 등 다양한 방안을 시행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선 사업의 본원적 경쟁력 강화로 수익성을 높여야 한다”면서 “위기가 일상이 된 지금, 우리가 당면한 어려움의 근본 원인은 외부환경이 아닌 우리 핵심사업의 경쟁력 저하”라고 지적했다.
최근 롯데그룹은 신용도가 하락했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롯데지주, 롯데물산, 롯데캐피탈, 롯데렌탈, 롯데케미칼, 롯데건설 등 6개사의 신용등급이 일제히 낮아졌다. 롯데케미칼의 기업 신용등급이 AA(부정적)에서 AA-(안정적)으로 내리면서 롯데지주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은 AA-(부정적)에서 A+(안정적)로 한 단계 떨어졌다.
롯데지주의 신용등급은 주요 계열사인 롯데케미칼·롯데쇼핑·롯데웰푸드·롯데칠성 등 4개사의 신용도 결합 가중치를 적용해 평가된다. 롯데물산·롯데캐피탈·롯데렌탈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도 AA-(부정적)에서 A+(안정적)로 각각 낮아졌다.
롯데그룹의 핵심 사업인 유통 계열사 실적도 부진한 상황이다. 롯데마트의 1분기 매출은 1조184억원, 영업익은 67억원이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4%, 73.5% 감소한 규모다. 롯데슈퍼도 매출과 영업익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7.2%, 73.3% 줄었다.
신동빈 회장은 지난 3월 5년 만에 롯데쇼핑 사내이사로 복귀했다. 이달 초엔 롯데쇼핑이 오픈한 롯데마트 그랑그로서리 구리점을 찾아 현장을 둘러봤다.
롯데웰푸드는 올 1분기 매출 975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5% 증가했지만, 영업익은 163억원으로 56.1% 감소했다. 같은 기간 롯데칠성음료 매출은 2.8% 줄어든 9103억원, 영업익은 31.9% 줄어든 250억원으로 집계됐다.
여기에 롯데는 올해 인력 구조조정도 단행했다. 지난해 롯데온과 롯데면세점, 세븐일레븐 등이 인원 감축에 나선데 이어 올 4월엔 창사 처음으로 롯데웰푸드가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특히 롯데그룹은 지난해 말부터 유동성 위기설에 시달리고 있다. 롯데는 올 초 기업설명회를 열어 위기설 진화에 나섰다. 또 지난해 11월 롯데케미칼에 대해 “석유화학 업황 침체로 인해 수익성이 저하된 것”이라며 “그룹 전체 부동산 자산 가치가 지난달 평가 기준 56조원이고, 즉시 활용한 가용예금도 15조4000억원을 보유하는 등 충분한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했다.
◇롯데지주의 또 다른 고민은 ‘높은 자사주 비율’
롯데지주는 유통 빅3(롯데·신세계·현대) 가운데 가장 높은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다. 롯데지주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회사의 자사주 보유율은 지난해 말 기준 32.51%에 달한다. 롯데지주는 지난달 26일 롯데물산에 약 1480억원 규모의 자사주 5%(524만5000주)를 매각해 27.5%로 낮아졌다.
롯데지주는 지난 3월 자기주식 처분 결정 공시를 통해 “발행주식 총수의 약 15%에 해당하는 자사주를 매각 또는 소각할 계획”이라고 했다.
현재 이재명 정부는 기업의 자사주 의무 소각을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 추진을 공식화했다. 롯데지주는 롯데물산에 자사주를 5% 매각했지만,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규제 기준인 10%를 크게 웃돌고 있다.
신세계그룹의 이마트는 지난 4월 372억원 규모의 자사주 28만주를 소각했다. 현재 이마트 자사주 비율은 2.89%다. 이마트는 2026년까지 추가 소각 계획을 밝혔다. 신세계백화점도 지난 2월 자사주 20만주를 소각해 보유율을 10.9%에서 9.09%로 낮췄고, 향후 3년간 매년 2% 이상 추가 소각하겠단 방침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의 지주사인 현대지에프홀딩스는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말 보유하던 자사주 6.60% 중 절반을 소각해 현재 보유율은 3.42%다.
롯데지주 관계자는 “자사주 소각 계획은 있다”면서 “어느 정도 규모의 자사주를 계획할지 등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