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대주주 트러스톤, 신사업 명분 EB 발행 실체 의문 제기
2024~2025 사업·분기보고서에 신사업 안건 전무
경영상 목적 실체 유무, 소수주주 권익 침해 등 심리될 듯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태광산업이 신사업 진출을 명분으로 자사주를 담보로 한 교환사채(EB) 발행에 나섰지만, 최근 1년간 해당 내용이 이사회에서 단 한 차례도 논의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신사업 투자가 EB 발행의 실질 목적이 아니라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태광산업 EB 발행의 ‘필요성 및 정당성’을 흔드는 증거가 될지 주목된다.
3일 시사저널e가 확보한 태광산업 2대 주주 트러스톤자산운용이 태광산업 이사진들을 상대로 낸 가처분 신청서에는 이 같은 내용이 담겼다. 트러스톤은 이사회 결의의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신청을 서울중앙지법에 낸 상태다.
태광산업은 지난달 27일 이사회에서 약 3186억원 규모의 사모 EB 발행을 의결했다. 교환대상은 자사주 24.41%(약 27만주)이며, 같은 날 정관 변경을 위한 임시주주총회도 소집했다. 변경된 사업목적에는 화장품, 부동산, 블록체인, 호텔 등 기존 사업과 무관한 13개 항목이 포함됐다.
그러나 태광산업의 2024년 사업보고서와 2025년 1분기 분기보고서를 보면, 최근 1년 이상 이사회에서 화장품, 부동산, 블록체인, 호텔 등 새로 추가된 13항목 신사업과 관련된 논의는 단 한 차례도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석유화학·섬유 부문에 대한 일반적 검토 언급 외에, 새로 추가된 13개 사업에 대한 계획이나 자금 운용, 투자 심의 내용은 확인되지 않는다.
트러스톤은 신청서에서 “정관 변경이 실제로 신사업 추진을 위한 것이 아님은 명백하며, EB 발행을 염두에 둔 요식행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교환사채 발행을 위한 형식 요건을 갖추기 위해 정관상 목적을 확장했다는 시각이다.
최근 1년간 이사회에서 새로 추가된 신사업 관련 논의가 전혀 없었다는 사실은, EB 발행 명분이 된 ‘신사업 투자’가 실질적 경영 목적이 아님을 드러내는 정황증거가 될 수 있다. 자금조달 필요성 자체가 부재했음을 시사하고, 발행의 타당성과 정당성 또한 약화된다.
업계에선 태광산업이 상법 개정으로 자사주 활용이 제한되기 전에 정관 변경과 EB 발행을 병행한 것은, 제도 시행 이전 규제를 회피하려는 한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자사주는 원칙적으로 소각 또는 처분 대상임에도, EB 구조를 통해 이를 제3자에 교환 조건으로 우회 이전함으로써 향후 지배력 확보나 재편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법원도 향후 가처분 심문에서 ‘경영상 목적의 실체 유무’와 ‘소수주주 권익 침해’ 여부를 주요 판단 기준으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 태광산업은 현금성 자산이 1조원을 상회하는 상황에서, 자사주를 담보로 외부 자금을 조달해야 했던 사유에 대해 정당성을 소명해야 한다.
나아가 신사업 검토 없이 전격적으로 이뤄진 EB 발행은 이사들의 충실의무 및 선관주의의무 위반에 해당할 수 있어, 향후 형사적 쟁점으로도 비화할 여지가 있다. 트러스톤은 이사회 결의가 교환 조건·인수자·가격 산정 기준 등 핵심 사항을 정하지 않은 채 대표이사에게 전권을 위임했다며, 이는 상법상 ‘이사회 직접 결의 요건’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러스톤의 가처분 신청이 인용될 경우 태광산업은 EB 발행 절차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자사주 활용과 관련한 시장 신뢰 회복도 중요한 과제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반면 기각될 경우 본안 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며, 이사회 권한 위임의 정당성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 장기적 쟁점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한편 태광산업은 트러스톤이 제기한 가처분 신청 결과가 나올 때까지 EB 발행의 후속 절차를 중단하기로 했다. 다만 EB 발행을 두고 ‘생존형 자금 조달’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태광산업에 따르면 회사가 보유한 현금성 자금은 5월 말 기준 1조9000억원 수준이지만, 실제 가용 가능한 투자 재원은 1조원이 채 되지 않는다. 태광산업 측은 “정부 정책을 반영해 자사주를 소각하고 이를 통해 주식 가치를 높이는 일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적극적인 투자와 사업재편을 통해 생존 방안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