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 상장예비심사 통과···상장시 시초 최소 1조원 예상도
지분 65% 최대주주 KHI는 대박···20% 구주매출로 수백억 현금화
2020년 실패했던 케이프 적대적 M&A 재시도용 현금이라는 시선도
[시사저널e=이승용 기자] 중형 조선사 대한조선이 한국거래소로부터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상장심사 승인을 받으면서 시장에서는 지난 2020년 상장사 케이프를 놓고 불거졌던 경영권 분쟁이 재발할 수 있다는 관측이 흘러나오고 있다.
케이프는 LIG투자증권이 전신인 케이프투자증권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 2020년 당시 김종호 케이프그룹 회장은 케이프투자증권 전문경영인이었던 임태순 대표에게 케이프를 매각하려고 했는데, 이 과정에서 케이프 경영권을 놓고 김광호 KHI(케이에이치아이) 회장 측과 ‘서강대 내전’이라고 불리는 경영권 분쟁이 펼쳐졌다.
결국 임 대표가 30%대 지분을 확보하고 이후 KHI 측이 옛 STX조선해양(케이조선)과 대한조선 인수에 보유 자금을 투입하면서 케이프 경영권 분쟁은 이후 다소 잠잠해졌다.
하지만 이번 대한조선 상장을 통해 KHI는 막대한 투자 차익을 거둘 전망이다. 당장 구주매출을 통해 최소 수백억원의 현금을 마련할 것으로 예상된다.
2000억원가량에 불과한 케이프 시가총액과 추가로 동원할 수 있는 자금 여력이 많지 않은 임 대표 측 상황을 고려하면 케이프 경영권 분쟁이 다시 벌어질 가능성을 배재할 수 없다는 관측이 시장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 대한조선 상장 승인···최대주주 KHI는 ‘잭팟’
2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날 대한조선은 유가증권시장 상장예비심사 승인을 받았다. 앞서 대한조선은 KB증권과 NH투자증권을 상장주관사로 선정하고 지난 4월 초 상장예비심사를 신청했는데 두 달 만에 상장 심사를 통과했다.
대한조선은 1987년 설립된 조선사로 과거 대주그룹 계열사였다. 주로 중대형 유조선을 만드는 데 지난 2009년 워크아웃을 거쳐 산업은행 관리하에 들어갔다. 2014년 법정관리를 졸업했지만 주인을 찾지 못하다 지난 2022년 김광호 전 모나리자 회장이 이끄는 KHI가 한국투자프라이빗에쿼티(PE)와 SG PE와 컨소시엄을 꾸려 2000억원에 대한조선을 인수했다. KHI가 700억원, 한투PE-SG PE가 1300억원을 내는 구조였다.
대한조선은 지난 2023년부터 흑자로 전환했고 지난해에는 매출 1조746억원, 영업이익 1582억원을 냈다. 이는 전년 대비 매출은 31.7%, 영업이익은 340.3% 증가한 것이다. 올해도 이미 3년치 일감을 수주한 상태다.
대한조선의 최대주주는 KHI로 65%를 들고 있고 2대주주는 안다H자산운용으로 펀드를 통해 31.4%를 들고 있다. 안다H자산운용은 지난해 KHI 교환사채(EB)에 투자하고 한투PE-SG PE의 전환사채(CB)를 인수하는 형태로 한투PE-SG PE의 지분을 인수해 대한조선 2대 주주에 올랐다. 상장을 앞두고 전량 보통주로 전환한 상태다.
대한조선은 이번에 3852만6312주를 상장하는데 이 가운데 1000만주를 공모할 예정이다. 1000만주 가운데 구주매출은 200만주, 신주모집이 800만주다. 구주매출은 전량 KHI 몫이다.
대한조선의 예상 시가총액은 1조원을 넘어서고 있다. 3852만6312주가 상장하는 점을 고려하면 공모가로 주당 3만원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KHI가 200만주를 구주매출하면 당장 600억원을 현금화하는 셈이다. KHI는 공모가에 따라 그 이상도 현금화할 수 있다. 보호예수가 끝난 이후 지분 매각을 한다면 훨씬 막대한 자금을 현금화할 수 있다.
◇ KHI, 케이프 경영권 다시 도전하나
시장 일각에서는 KHI가 대한조선 IPO과정에서 구주매출을 하려고 하는 배경을 놓고 케이프 경영권 확보를 위한 실탄 마련이 아니냐는 시선이 그치지 않고 있다.
KHI는 지난 2020년 당시 코스닥 상장사 케이프 경영권을 놓고 임태순 현 대표 측과 경영권 분쟁을 벌였다. 케이프는 조선 기자재 전문 제조업체로 자회사로 케이프투자증권(옛 LIG투자증권)을 거느리고 있다.
기존 케이프 오너였던 김종호 케이프그룹 회장은 지난 2020년 김광호 KHI 회장 측이 명의를 쪼개 케이프 지분을 매입하고 사외이사와 감사를 직접 추천하는 등 경영권을 위협하자 케이프투자증권 대표를 맡고 있던 임태순 대표에 지분을 매각하기로 했다. 전문경영인 경영권을 인수하는 일종의 MBO(management buyout)였다.
임 대표는 자금력이 부족해 KTB투자증권과 리딩투자증권 등으로부터 투자를 받아 템퍼스인베스트먼트를 설립했고, 이를 통해 케이프 경영권을 인수했다. 임태순 대표→템퍼스파트너스→템퍼스인베스트먼트→케이프→케이프투자증권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후 케이프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소송전이 펼쳐졌다. 임태순 대표와 김광호 KHI 회장이 각각 서강대 총동문회 회장과 부회장을 맡았던 이력 때문에 이들 간 경영권 분쟁은 한 때 서강대 내전으로 불리기도 했다.
템퍼스인베스트먼트 등 임대표 측의 지분 인수가 마무리되면서 지분율은 30%대를 넘겼고 케이프 경영권은 다소 안정됐다. 김광호 KHI 회장 측이 추가로 지분을 매입할 수 있었지만 자금을 케이조선(STX조선해양)과 대한조선 인수에 투입하면서 이후 경영권 분쟁은 다소 소강상태로 전환됐다.
KHI측은 이후 꾸준히 주주총회에서 주주제안을 통해 이견을 드러내고 있다. 올해 주주총회에서도 임 대표의 케이프 이사회 진입을 막기 위해 주주제안으로 정관 제33조 '이사의 선임' 개정을 요청하기도 했다.
케이프를 인수했지만 임 대표는 그동안 자본시장법상 차이니즈월(금융사 정보교류 차단)에 따라 임 대표의 이사회 진입이 힘들었지만 올해부터 기준이 업무영역에서 정보기준으로 바뀌면서 임 대표의 케이프 이사회 진입이 가능해졌다.
KHI는 정관 변경을 통해 ‘회사에서 2년 이상 근무한 경험이 있거나 주총 결의일 현재 계속해서 1년 이상 근무 중인 자’로 이사의 자격을 제한함으로써 임 대표의 케이프 이사회 진입을 막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주주총회에서 부결됐고 임 대표는 기타비상무이사로 임명됐다.
이런 상황에서 KHI가 대한조선 구주매출을 통해 확보한 현금을 케이프 지분 확대에 투입한다면 향후 임 대표 경영권은 위태로워질 수 있다. 템퍼스인베스트먼트는 보유주식 전량을 담보로 385억원의 주식담보대출을 받았을 정도로 자금력에 한계가 있다.
반면 케이프의 시가총액은 2000억원 수준에 불과해 KHI의 대한조선 구주매출 금액만으로도 충분히 임 대표 측 경영권을 위협하는 지분을 매입할 수 있다.
대한조선이 지난 4월 한국거래소에 상장예비심사를 신청하자 임 대표 측의 대응도 빨라지고 있다.
지난달 케이프는 최초로 주당 300원, 총 92억원의 중간배당을 결의했고 이달 지급했다. 재원은 지난달 보유하고 있던 330만주 자사주 가운데 320만주를 처분한 자금이었다. 케이프는 오는 9월까지 잔여 자사주 중 5만8487주도 처분해 임직원 성과금으로 지급하겠다고 지난 18일 공시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