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저학년 성대경시, KMC, KMA, KUT, HME 등···고학년 되면 KMO
생기부 수상 기록 기재 불가, 응시료 비싸져도 무지성 응시 수험생도
“자녀 정서 배제하고 유행 따라 시험만 치르면 사교육시장 호구될 수도”
[시사저널e=노경은 기자] 사흘 전인 지난 21일 오전 전국의 주요 학교에서는 KMA(한국수학학력평가) 시험이 치러졌다. 한 학교마다 수백 명의 아이들이 벽보에 붙은 수험생 고사실을 확인하고 시험을 보러 들어가는 모습이 마치 대입 수학 능력시험장을 방불케 했다.
다만 일부 학부모가 수험생의 손을 붙들고 교문 넘어 고사실 앞까지 아이들을 데려다주는 것만이 달랐을 뿐이다. 응시학년은 초등학교 1학년부터였어도 선행학습을 해 온 유치원생이 점검 차원에서 응시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는데, 아직 학교를 다녀본 적 없는 미취학 어린이이다 보니 고사실조차 스스로 찾는 게 어려웠던 것이다.
초등학교 교육과정에서 중간, 기말고사가 폐지되면서 사설기관의 경시대회나 학력평가, 콘테스트가 유행처럼 생겨나고 있다. 초등 저학년의 수학은 학부모들 사이에서 이른바 성대경시라 불리는 전국 영어수학 학력경시대회를 비롯해 한국수학인증시험(KMC), 한국수학학력평가(KMA), 고려대학교 전국 수학학력평가시험(KUT), 해법수학 학력평가(HME) 등이 있다. 그러다 고학년이 되면 한국수학올림피아드(KMO) 등으로 관심이 옮겨간다.
영어의 경우에는 종편 방송사나 미디어그룹 내 뉴미디어 계열사의 영어 스피치 콘테스트 등이 있고 두 곳의 콘테스트는 생긴지 각각 1~2년이 됐다.
가장 인기가 좋은 성대경시 응시료는 2021년 4만5000원이었지만 4년새 55%나 급등해 올해는 7만원이었다. 심지어 기출문제집도 고가에 주최 측에서 독점으로 판매해 시중 서점에서는 구매가 불가하다.
영어 스피치 콘테스트 응시료는 적게는 인당 12만원에서 많게는 14만원(지난해 기준) 책정했을 정도로 상당히 높다. 주최 측은 수험료 받고 권위도 세우며 공신력을 키우는 기회가 되는 반면, 학부모들은 한물간 유행인 외부 시험을 하나의 로드맵으로 인식하고 무지성으로 접수하는 경우가 있다.
실제 이날 서울 강남구의 한 고사장에는 벽보 형태로 해당 고사장에서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의 정보가 적혀 있었는데, 생년월일과 응시학년을 비교해 보면 제 나이보다 수년 뒤 학년의 수학시험을 치르는 이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최근 사교육 트렌드이자 키워드가 ‘선행’인 영향이다.
특히 유아 대상의 유명 사고력 프랜차이즈 수학학원에서는 유치원생을 단체로 접수시켜 와 초등 2학년 시험을 보게 하거나, 초등 3학년 학생이 중학교 2학년 수학 시험을 접수해 보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제 학년보다 높은 학년의 시험을 치르고 수상한 결과는 합격자 00명 배출 등의 학원 홍보 마케팅 용도로 쓰이기도 한다. 시험 주최인 사설기관은 물론 학원 배불리기가 되는 것이다.
사실 사설 경시는 불과 7~8년 전에는 생활기록부에 수상 기록 기재가 가능해 고입이나 대입에도 적을 수 있었다. 때문에 당시만 해도 영재과학고나 외고 등 특수목적 학교에 입학전형에서 상당한 도움이 됐고, 이를 위해 시험에 응시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
하지만 사회 고위층 자제들의 입학사정관 전형이나 각종 품앗이 스펙쌓기, 허위 문서 등의 사회적 문제가 불거지며 2018년부터 대학입학전형 등에서 대외 수상기록을 제출할 수 없게 됐다. 그럼에도 무지성 무비판적으로 때 되면 시험을 보니 이를 위한 사교육도 성행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늘어만 가는 사설 시험에 대해 학부모가 휘둘려 아이 손 쥐고 고사장만 쫒아다닐 게 아니라 시험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스탠스를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서울 강남구에 재직중인 한 초등교사는 “학교 생기부에 사설 시험 수상 실적을 기록하지 않은 지 꽤 됐다. 학부모들도 외부기관의 상장을 가정으로 받지 학교에서 나눠주는 분위기가 전혀 아니다 보니 누가 어느 상을 탔는지조차 모른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자녀가 점검 차원의 시험을 응시하길 원하는지 그 의사부터 확인하고 응시를 결정해야 한다. 아이 정서는 내려두고 유행따라 분기별로 어려운 시험만 치르는 건 완벽하게 사교육시장 배를 채워주는 호구가 되는 것일 뿐”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