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주주들, 석포제련소 유출 사고에 이사들 상대 280억 손해배상
행정·형사 사건기록 제출 놓고 충돌···재판부, 이사 책임 특정 보완 지시
영풍정밀, 9300억 손해배상 소송도 열려···MBK 계약서 원본 제출 요구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 낙동강 상류에 위치한 영풍 석포제련소 전경. / 사진=연합뉴스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 낙동강 상류에 위치한 영풍 석포제련소 전경.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장형진 영풍 고문 측이 법정에서 석포제련소 카드뮴 유출로 발생한 280억원 과징금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법인이 행정청의 제재를 받았다고 해서 제재 사유가 발생했을 당시 이사들이 당연히 상법상 충실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장 고문의 대리인은 19일 영풍 소액주주들(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경제개혁연대)이 장 고문 등 전현직 이사 4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주주대표소송) 첫 변론기일에서 이같이 밝혔다.

주주대표소송은 주주가 회사를 대신해 이사의 책임을 추궁하는 소송이다. 원고들은 석포제련소의 카드뮴 유출과 관련, 영풍이 환경부로부터 부과받은 과징금 280억원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냈다. 원고들은 상법이 정한 대표소송의 절차에 따라 영풍 감사위원회에 소송을 제기할 것을 청구했으나, 회사 측에서 응하지 않자 회사를 위해 이 소송을 냈다.

이날 처음 열린 변론기일에서 재판부는 원고 측의 문서송부촉탁 신청에 양측의 이견이 있다고 확인했다. 원고들은 석포제련소 카드뮴 유출 사건과 관련된 행정 및 형사재판 관련 서류 일체를 신청했는데, 피고 측은 영업비밀 또는 사생활정보 포함을 이유로 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장 고문 측 대리인은 “주주대표소송은 이사의 충실의무 위반을 이유로 한 소송인데, 원고들은 이사들이 어떤 위법행위를 했는지 명확히 특정하지 않았다. 법인이 행정청의 제재를 받았다고 해서 재직한 이사들이 당연히 위법한 행위를 했다고 볼 수는 없다”면서 “원고 측이 먼저 이 사건 심판 대상을 특정하고, 증거신청 방법과 대상과의 관계를 밝힌 뒤 재판부가 (문서송부촉탁 신청의) 채부 결정을 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에 소액주주 측 대리인은 “원고들은 주주로서 회사를 대리해 소송을 제기하다보니 회사 내부자료 등 증거를 입수하는 방법은 소송뿐이다. 그래서 문서송부촉탁을 신청한 것이다”면서 “행정재판과 형사재판에서 카드뮴 유출의 위법성이 다투어졌으므로 청구원인이 특정되지 않았다는 주장은 어폐가 있다”라고 말했다.

양측의 변론을 듣던 재판부는 “원고 측이 피고들의 어떤 행위 책임을 묻고자 하는지 특정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육하원칙에 따라 밝히기는 어렵더라도 어떤 사건의 어떤 행위 및 책임을 묻겠다는 것인지 특정해야 관련성 있는 증거자료에 대한 채부가 가능할 것 같다”면서 “원고에게 이 부분 보완을 명령한다”라고 정리했다.

재판부는 오는 8월28일 두 번째 변론기일까지 보완을 명령하고, 그 이후 증거신청에 대한 채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영풍은 지난 2021년 11월 환경부로부터 ‘석포제련소에서 2019년 4월부터 2021년 4월까지 특정수질유해물질인 카드뮴이 공공수역인 낙동강으로 유출됐다’는 이유로 과징금 280억원을 부과받았다.

회사는 이 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에서 패소했다. 행정사건 재판부는 제련소의 현황, 배수시스템, 주요 조사·단독 결과 등을 근거로 ‘제련소의 아연 제련 공정에서 이중옹벽, 배수로 및 저류지, 공장바닥을 통해 카드뮴이 낙동강으로 유출됐다’고 판단했다.

영풍 전현직 이사들이 기소된 형사재판에서도 제련소 조업활동으로 제련소 인근 카드뮴 오염결과가 나타났다는 점이 인정됐다. 다만 카드뮴 유출 일시와 피고인들의 공소사실이 대응하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됐을 뿐이다.

◇영풍정밀 제기 ‘9천억 손배’ 첫 변론도 열려···영풍-MBK ‘경영협력계약서’ 원본 신청

소액주주들의 소송에 앞서 같은 재판부는 영풍정밀이 ‘적대적 M&A에 따른 손해’를 이유로 장 고문과 박영민·배상윤 대표이사, 박병욱·박정옥·최창원 사외이사 등 등기이사 5명을 상대로 낸 9300억원대 손해배상소송 첫 변론기일도 진행했다.

재판부는 영풍정밀과 장 고문 측의 소장 및 답변서 제출을 확인하고, 향후 절차 진행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영풍정밀 측은 영풍이 MBK와 맺은 ‘경영협력계약서’의 문서제출명령을 신청하겠다고 했다. 영풍정밀 대리인은 “손해 발생 여부와 함께 손해 범위를 확정하기 위해 계약서 원본이 확보해야할 핵심 자료다”라고 신청 배경을 설명했다.

재판부는 9월11일 다음 기일을 지정하고, 그 전에 채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영풍정밀은 지난해 12월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장 고문 등이 MBK 측에 유리한 조건으로 영풍이 가진 고려아연 지분을 넘겨 영풍 주주들이 손해를 봤다며 이번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영풍이 MBK가 요구할 경우 보유하고 있는 고려아연 지분 약 274만주를 넘기도록 콜옵션을 줬는데, 실제 MBK가 콜옵션을 행사할 경우 9300억원의 손해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9300억원은 영풍이 공개적으로 밝힌 고려아연 주당 가격 100만원에서 MBK의 고려아연 최초 공개매수가 66만원의 차액(33만원)에 274만주를 곱한 금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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