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매수 비율·매수가 높여 상장폐지 1년만 재도전
“패션 업황 부진···회사 경쟁력 강화 위한 조치”
[시사저널e=한다원 기자] 탑텐·지오지아 등 패션 브랜드 운영사 신성통상이 자발적 상장폐지에 나선다. 신성통상은 상장폐지를 위한 공개매수 절차에 돌입했다. 회사는 자사 경쟁력 강화를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사실상 경영 후계 구도를 굳히기 위한 의도란 분석이 나온다.
12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신성통상은 자진 상장폐지를 위한 주식 공개매수에 돌입했다. 지난해 6월 1차 공개매수에서 개인투자자 반발로 지분을 사들이는 데 실패하자 매수가를 높여 재시도에 나선 것이다.
신성통상은 최근 가나안과 에이션패션이 신성통상 보통주 2317만8102주(16.13%)에 대해 내달 9일까지 공개매수를 위한 청약 신청을 받는다고 공시했다. 가나안과 에이션패션은 지난해 6월 이미 상장폐지를 목적으로 지분 22%의 공개매수를 추진한 바 있다.
당시 주주들은 공개매수 가격이 주당 2300원으로 신성통상 오너 일가 간 지분 거래가인 주당 4920원 대비 지나치게 낮은 가격이라고 반발했다. 지난해 공개매수에 실패했던 신성통상은 이번엔 공개매수 가격을 주당 4100원으로 높였다. 이날 신성통상은 주당 4070원에 거래됐다.
공개매수 비율도 지난해와 다르게 설정했다. 지난해 신성통상은 가나안과 에이션패션이 6:4 비율로 청약주식을 매수했다. 올해는 가나안과 에이션패션이 청약주식을 7:3 비율로 매수하기로 했다.
그간 신성통상은 낮은 주주환원으로 소액주주들과 갈등을 빚어왔다. 3000억원대 이익잉여금을 쌓아놨음에도 2012년 주당 5원을 배당한 이후 장기간 현금배당을 실시하지 않아서다. 주주들 사이에서 기업가치 제고 공시, 주주환원책에 대한 요구가 커지자 신성통상이 지난해 상장폐지 시도에 실패한 것이다.
다만 기존 주주들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다. 단순 주당 가격 인상으론 상장폐지에 설득력을 얻기 어렵단 것이다. 특히 신성통상은 과거 노 재팬 운동 반사이익으로 실적 상승 곡선을 그렸으나 오너 일가 지배력 강화에만 힘써왔단 지적이 제기됐다.
신성통상은 지난 2023년까지 매출, 영업익이 해마다 상승했다. 다만 지난해부터 실적이 하락했다. 신성통상의 지난해 매출은 1조5079억원, 영업익은 1218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2.3%, 15.2% 하락했다. 올 1분기 매출은 296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가량 올랐지만, 영업적자는 16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8억원 늘었다.
무엇보다 신성통상은 염태순 회장의 후계 구도를 확립하기 위해 상장폐지를 결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신성통상의 최대주주는 가나안(45.63%)이다. 에이션패션의 지분율은 20.02%다.
염태순 회장은 예전부터 염상원 이사의 그룹 내 지배력을 높이는데 주력해왔다. 지난 2020년 신성통상에 입사한 염 이사는 2022년 가나안 사내이사로 오른 뒤 경영기획실 근무, 물류 업무 등 실무 업무를 맡으며 경영수업을 받았다.
가나안 최대주주는 염상원 이사다. 염 이사는 지난해 말 기준 지분율 82.43%를 보유 중이다. 현재 염상원 이사의 최대주주는 가나안, 가나안의 최대주주는 신성통상이란 점에서 가나안이 신성통상 지분을 늘릴수록 염 이사의 경영권은 강화된다.
유통업계에선 신성통상이 상장폐지에 성공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공개매수가 실패로 돌아서도 포괄적 주식교환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포괄적 주식교환에 나서면 신성통상은 가나안의 완전 자회사로 편입해 상장폐지할 수 있다. 신성통상 입장에서 상장폐지에 반대하는 주주들의 지분을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특히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면서 소액주주 권익 보호를 강화하는 상법 개정안 발의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공개매수나 포괄적 주식교환 방식으로 소액주주 지분을 정리하는 작업이 까다로워질 가능성이 높고, 배당 확대 요구도 거세질 수 있다. 신성통상은 이 정부를 의식해 상장폐지 절차에 서두르는 모습이다.
신성통상 관계자는 “공개매수는 패션 업황이 둔화되고 불확실성이 확대돼왔다”면서 “경영 활동을 유연하게 가져감과 동시에 의사결정을 신속하게 하고, 회사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진행한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