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컴·티맥스, 한 시대를 이끌었던 국산 소프트웨어 기업의 현재

그래픽 = 김은실 디자이너
그래픽 = 김은실 디자이너

[시사저널e=송주영 기자] 한때 우리나라에도 ‘스타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있었다. 개인용 시장에는 한글과컴퓨터(한컴), 기업용 시장에는 티맥스소프트가 대표적이다. 외산 소프트웨어와 당당히 경쟁하며 국산 소프트웨어의 ‘자존심’으로 불리던 이들 기업은  창업자 몰락과 함께 성장 과정을 달리하게 됐다.

사모펀드에 매각된 것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기업이 성장하고 새로운 도약을 이룬다면 긍정적인 변화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많은 경우,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하기보다는 회사가 축소되거나 기술 중심의 비전을 잃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한컴과 티맥스소프트는 여전히 국내에서 ‘잘 나가는’ 기업이지만 창립 초기처럼 대중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모습은 아니다.

1990년대 이찬진 전 대표가 세운 한컴은 ‘아래아한글’을 앞세워 공공기관과 교육기관의 표준 워드프로세서로 자리잡았다. ‘아래아한글’ 개발에는 당시 젊은 개발자였던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도 참여했다. 1994년과 1995년을 거치며 한때 시장점유율이 80%를 넘어서기도 했다.

한컴은 ‘국민기업’, 아래아한글은 ‘국민 워드프로세서’로 불렸다. 지금까지 ‘국민’이란 수식어가 붙은 소프트웨어는 아래아한글이 유일하다. 8.15 마케팅 등 ‘애국 마케팅’은 열렬한 지지를 받았고, 회사 지분을 자발적으로 사들이는 ‘국민 지분 운동’도 벌어졌다.

그러나 지금의 한컴은 분위기가 다르다. 아래아한글은 여전히 공공시장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지만, 기업의 이미지 자체는 여러 차례 오너가 바뀌면서 희석됐다. 2010년 한컴을 인수한 김상철 회장은 IT 전문가보다는 ‘기업 사냥꾼’ 이미지이긴 했다. 이후 2016년 매출 1000억원 돌파, 2021년 AI 중심 기업으로의 변신 선언 등 의미 있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한컴은 더 이상 ‘국민기업’의 아우라는 없다.

여기에 오너 리스크도 더해졌다. 김 회장은 2019~2020년 사이 계열사 한컴위드 주식 거래 관련 미신고 혐의로 기소돼, 지난 4월 벌금 2000만원을 확정받았다. 아울러 차남인 김성준 씨는 가상화폐 '아로와나토큰'을 활용해 9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기업용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한 시대를 풍미한 티맥스소프트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1997년 KAIST 교수 출신 박대연 전 회장이 창업한 이 회사는 공공·금융 시장에서 WAS(웹 애플리케이션 서버)로 두각을 나타냈다. 외산 강자인 IBM과 BEA시스템즈(오라클에 인수)를 제치고, 2000년 국내 미들웨어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한때 1500명에 달하던 직원 수는 국내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가장 많았다.

하지만 무리한 확장 전략이 독이 됐다. DBMS, 운영체제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며 ‘토털 솔루션’ 기업을 표방했지만, 성과는 따라주지 않았다. 이후 매각을 거쳐 2023년 진대제 회장의 스카이레이크가 인수했고, 1년 만에 스틱인베스트먼트에 다시 매각됐다. 

한컴과 티맥스소프트의 사례는 우리나라 대표 소프트웨어 기업의 흥망을 보여준다. 더 이상 ‘스타 소프트웨어’라 부를 만한 국산 업체를 찾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각에선 “이제 소프트웨어는 개별 산업이라기보다 모든 산업의 기반이 되는 구조 개념”이라며 “중요한 건 활용이며 그 대표적 예가 인공지능의 활용”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관계자는 “활용 중심의 사고는 산업의 깊이를 얕게 만든다”며 “AI나 클라우드 같은 기술 흐름만 좇기보다는 넓은 시야로 산업 기반을 다지는 육성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결국 인공지능도, 클라우드도, 사물인터넷도 모두 소프트웨어 이야기다. 기술을 쓰는 곳마다 소프트웨어는 살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국산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존재는 더욱 중요해진다.

살펴보면 우리나라에도 여전히 견고하게 기반을 다진 국산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있다.

DBMS 시장의 큐브리드, ERP의 더존비즈온·영림원, 지식관리의 가온아이, 웹리포팅의 포시에스 등은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의 버팀목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국산 SW의 품격’은 이처럼 지금도 현장에서 묵묵히 ‘국산’의 가치를 지켜가는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기술로 철학으로 품격으로 시장을 지키는 이들의 어제, 오늘, 내일을 기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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