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 올해 정비사업 지정 고심···선도지구 주민들 분담금에 반발
이주대책도 백지화···일정 조정 불가피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1기 신도시 재건축 대장으로 꼽히는 분당이 난관에 봉착한 모양새다. 선도지구로 지정된 단지에서 공공기여 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주민 반발이 이어졌고, 올해 후속 정비 대상지 선정도 지연되고 있다. 여기에 이주대책까지 차질을 빚으면서 정비 속도나 물량 조절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 “공공기여 과도해”···분담금 5억원에 주민 반발
5일 업계에 따르면 성남시는 올해 분당 정비사업 물량을 어느 단지에 배정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물량은 선도지구 지정에 이은 후속 정비 대상지다. ‘공모 방식’과 ‘주민 제안 방식’ 중 어떤 절차로 진행할지 내부 조율이 길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모 방식은 지자체가 일괄적인 기준을 세워 대상지를 모집하는 방식이고, 주민 제안 방식은 단지별로 정비계획을 제안받아 선별하는 구조다. 주민 제안 방식은 조합 주도의 자율성이 크지만 각 단지에 동일한 공공기여 기준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다른 지자체들은 이미 주민 제안 방식으로 방향을 정했지만 성남시만 유일하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성남시가 판단을 미루는 배경에는 선도지구 선정 과정에서 불거진 공공기여 논란이 자리하고 있다. 앞서 지난해 11월 시범2구역과 양지마을, 샛별마을 등 3개 구역(1만948가구)이 분당 선도지구로 선정됐다. 당시 성남시는 ▲공공기여 추가 제공(부지면적의 5%) ▲전체 세대 수의 12%를 이주대책으로 임대 ▲장수명 주택(오래 사용하도록 튼튼하고 유지·보수가 쉬운 구조로 만든 주택) 시공 등 강화된 조건을 제시했다. 해당 조건을 충족한 단지들이 선도지구로 지정됐지만 결과적으로 사업성이 크게 떨어졌다.
사업성 저하로 인해 조합원들은 수억원대 분담금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선도지구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양지마을은 전용면적 84㎡ 소유주가 동일 평형을 분양받으려면 추가로 내야 하는 분담금이 최소 2억4000만원이다. 여기에 세 가지 조건을 반영하고 공사비가 계속 오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분담금은 4억~5억원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선도지구로 지정된 아파트 단지에선 성남시에 공공기여 기준을 완화해 달라는 요청을 전달한 상태다.
분담금을 줄이기 위한 대안도 뚜렷하지 않다. 일반적으로는 용적률을 높여 일반 분양 물량을 늘리는 방식이 있지만, 용적률이 400%를 넘으면 공공기여율이 급격히 올라간다. 현행 기준상 용적률 326%일 때 공공기여율은 10%다. 하지만 400%를 초과하면 50%까지 높아진다. 결국 추가 수익보다 기부 부담이 더 커져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성남시는 올해 후속 정비사업 대상지에 대해 공공기여 기준을 일부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이미 선도지구로 지정된 단지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입장이다. 반면 공모 기준을 그대로 유지할 경우 또다시 과도한 부담을 우려한 조합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지난달 분당 내 40여개 단지의 재건축 추진준비위원장들은 “후속 정비 대상지는 주민 제안 방식으로 선정해야 한다”는 내용의 연명서를 성남시에 제출했다. 하지만 주민 제안 방식은 공모 방식과 달리 동일한 공공기여 기준을 강제하기 어렵기 때문에 형평성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 이주대책도 안갯속···“추가 인세티브나 규제 완화 고려해야”
여기에 이주대책이 사실상 무산되면서 정비사업 추진에 더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정부는 분당 재건축으로 인해 2028~2029년 사이 대규모 이주 수요가 몰릴 것으로 보고 야탑동에 공공주택 1500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인근 주민들의 거센 반발로 인해 성남시는 해당 계획을 철회했다. 이후 성남시가 제안한 대체 후보지 5곳도 국토부로부터 “2029년까지 입주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받으며 무산됐다. 해당 부지들은 개발제한구역이거나 지장물이 많아 인허가와 공사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 입주 시점까지 주택 공급이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 국토부의 설명이다.
성남시는 추가 대체지를 물색 중이지만 가용 부지가 부족해 현실적으로 마땅한 대안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성남시 전체 면적 중 34%가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이며 산지를 제외한 실제 개발 가능지는 3.82㎢에 불과하다”면서 “이주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선도지구는 물론 후속 정비사업 역시 계획대로 진행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사업 조절 가능성도 거론된다. 정부는 당초 선도지구를 중심으로 1기 신도시 재건축에 속도를 내려 했지만 예상보다 큰 주민 부담과 이주 대책 부재가 겹치면서 정비 물량이나 추진 일정이 일부 조정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 구상대로 정비사업을 밀어붙이기에는 조합의 재정 부담과 행정·물리적 여건이 받쳐주지 않는다”며 “선도지구에 대한 추가 인센티브나 규제 완화 없이 그대로 밀고 나간다면 후속 정비 대상지 선정뿐 아니라, 이미 지정된 선도지구의 일정조차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