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유통 방안 마련하겠다”
민주당 “소수 국내 은행 아닌 민간 영역에 맡겨야”
한은 “자본통제 우회 수단 악용 우려···은행 중심 도입해야”

/ 사진=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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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e=김희진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21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공약으로 내세운 원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 도입 논의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반면 한국은행은 도입에 신중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정책 추진 과정에서 중앙은행과의 견해차가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4일 오전 11시 여의도 국회의사당 로텐더홀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렸다.

앞서 이 대통령은 원화 기반의 스테이블 코인 발행·유통 등의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바 있다. 스테이블 코인이란 기존 암호화폐와 달리 가격 변동이 심하지 않도록 설계된 암호화폐다. 미국 달러나 유로화 등 법정 화폐와 1대 1로 가치가 고정돼 있어 안정적인 가격을 유지하려는 특징이 있다. 원화 스테이블 코인의 경우에는 원화와 1대 1로 가치가 연동된다.

앞서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 동안 원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그는 지난달 8일 경제 채널 유튜버들과의 라이브 토크쇼에서 “원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 시장을 구축해야 소외되지 않고 국부 유출도 막을 수 있다”며 “달러 및 미국 국채 기반의 스테이블 코인은 미국의 핵심 정책 중 하나지만 우리는 가상자산에 대해서 입장이 명확하지도 않고 적대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차기 정부 집권 시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지난달 21일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산하 디지털자산위원회 주최로 열린 ‘스테이블코인 정책 토론회’에서 민병덕 민주당 디지털자산위원장은 “원화 스테이블 코인 활성화 방안은 우리가 마주한 글로벌 금융 질서 전환기에 반드시 선제적으로 준비해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이 구상하는 원화 스테이블 코인 도입 계획은 발행 주체를 금융권에 한정하지 않고 유연하게 가져가는 방안이다. 스테이블 코인 발행 인가 요건을 자본금 50억원으로 정하되 발행 주체는 금융권으로 한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은행의 입장과 결을 달리하는 방향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원화 스테이블 코인 도입에 대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 총재는 지난달 29일 한국은행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원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에 대해 “원칙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면서도 “원화 스테이블 코인을 은행 기관 등 한은이 규제하는 기관이 아닌 비은행 기관이 마음대로 발행하게 되면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상당히 저해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한은이 규제하지 못하는 기관의 화폐 대용으로 쓰는 대체재를 가지고 있다가 혹시라도 부도가 나거나 사고가 나면 지급결제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가 한꺼번에 떨어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후 지난 2일 한은에서 열린 ‘2025 BOK 국제컨퍼런스’에서도 이 총재는 “원화 표시 스테이블 코인을 은행에만 적용할 것인지 비은행권에도 허용할 것인지 금융 안정성 측면에서 고려할 필요가 있어 미국보다 조심스러운 입장”이라고 언급했다.

이 총재는 발행 주체를 비은행권까지 허용할 경우 원화 스테이블 코인이 자본통제를 우회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도입되면 달러 스테이블 코인과의 교환이 매우 쉬워지는데 자본 규제가 있는 국가에서는 이러한 구조가 규제를 무력화하는 통로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 측은 즉각 반박했다. 민병덕 위원장은 지난 2일 논평을 통해 “원화 스테이블 코인 발행 주체를 은행 등 일부로 제한해 독점적 구조로 갈 경우 글로벌 네트워크와의 상호운용성 부족, 제한된 참여로 인한 활용처 부족 등으로 스테이블 코인이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원화 스테이블 코인의 발행 주체를 둘러싸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스테이블 코인이 통화 기능을 수행하는 만큼 한국은행의 방향을 따라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발행 주체를 한정할 경우 확장성이 제약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은 “스테이블 코인은 일정 부분 통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수단인 만큼 발행 주체와 제도 설계에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통화정책의 일관성과 안정성을 고려하면 한국은행의 정책 방향을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반면 이근주 한국핀테크산업협회 회장은 “해외 사례를 보면 스테이블 코인의 발행 주체가 민간인 경우가 많다”며 “발행 주체를 은행으로 제한하면 시장의 혁신 가능성을 제약하게 된다”고 했다.

이어 “국제적으로도 민간 참여를 제도화하는 방향이 주류인 만큼 스테이블 코인의 혁신성과 확장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기술력을 갖춘 핀테크사 등 민간 영역의 자율성을 충분히 보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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