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비전프로 보급형 후속작 출시 예정
삼성전자도 XR 신제품 가격 조정 전망
中 가성비 맞서 AI·콘텐츠 차별화 전략
[시사저널e=고명훈 기자] 삼성전자와 애플이 차세대 디바이스로 지목되는 확장현실(XR) 기기, 로봇 등에서 시장 선점을 위한 기술개발을 가속화하고 있다. 스마트폰과 마찬가지로 가성비를 앞세운 중국업체들과의 경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애플은 초고가의 XR 헤드셋으로 실패의 쓴맛을 본 뒤 보급형 제품 출시를 계획 중이며, 삼성전자도 이를 반면교사 삼아 올해 선보일 XR 신제품 기기 출고가를 하향 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두 회사는 이어 각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구축한 갤럭시, iOS 생태계를 강점으로 인공지능(AI), 콘텐츠 연동성 측면에서 중국과 차별화한단 계획이다.
◇삼성·애플 XR 헤드셋 시장 진출···가격 하향 조정 전망
4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애플은 지난해 2월 경쟁사보다 앞서 ‘비전 프로’를 출시하고 XR 헤드셋 시장 선점에 나섰다. 그러나 3500달러(약 500만원)의 높은 출고가로, 일반 소비자 입장에선 과도하단 지적이 많았다.
출시 당시 그간 XR 헤드셋 시장을 선점해온 메타 ‘퀘스트’ 시리즈 등과 비교해도 혼합현실(MR) 환경을 가장 매끄럽게 제공한다는 호평이 있었지만, 비싼 가격 때문에 판매량은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 시장조사업체 AR인사이더에 따르면 애플 비전프로의 작년 연간 판매량은 22만 4000대 수준으로, 회사가 제시한 출시 당시 목표 판매량인 100만대에 한참 못 미쳤다.
애플은 기존 비전 프로 대비 가격대를 대폭 내린 보급형 신제품을 출시함으로써 작년 5% 수준이었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겠단 방침이다. 내년말까지 스마트 안경 신제품도 선보인다. 신제품엔 음성 비서 ‘시리’와 자체 AI 시스템인 ‘애플 인텔리전스’를 활용한 전화, 음악 재생, 실시간 번역, 내비게이션 등 서비스를 강화해 전용 콘텐츠를 확대한다.
동시에 게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 파트너십을 확대해 자체 개발한 iOS 기반의 MR 운영체제 ‘비전OS’ 전용 콘텐츠 역량을 강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최근엔 비전OS에 오픈 소스 게임 플랫폼 엔진인 ‘고도(Godot)’를 통합함으로써 개발자들의 MR 기기 전용 게임 개발을 지원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도 올해 하반기를 목표로 구글, 퀄컴과 공동 개발한 XR 헤드셋 출시를 준비 중이다. ‘프로젝트 무한’이라는 이름의 해당 신제품에서 구글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퀄컴은 전용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인 ‘XR2+ 2세대’를 지원한다. 삼성전자는 갤럭시 스마트폰의 데이터를 XR 기기로 가져와, 생성형 AI를 비롯한 각종 기능과 콘텐츠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연동성을 높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애플의 비전프로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XR 신제품 출고가를 조정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다만, 퀄컴의 고사양 칩셋 탑재 등을 고려했을 때 어느 정도 높은 수준의 가격 책정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태문 삼성전자 MX사업부장(사장)은 지난 3월 스페인에서 개최한 ‘MWC 2025’ 전시부스 현장에서 “이 제품(프로젝트 무한)의 가장 큰 차별점은 기본적으로 무게나 착용감도 있지만, 인터페이스가 더 자연스러운 음성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이라며, “멀티모달 인터페이스가 된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중국도 피코, 엑스리얼 등이 각각 현지 시장을 대상으로 MR 기기와 AR 스마트 안경 등을 출시한 바 있다. 비보, 샤오미, 오포, 화웨이 등 중국 주요 스마트폰 제조사들도 XR 헤드셋 신제품 출시를 예고한 상황이다.
비보의 경우 애플 비전 프로와 유사한 형태의 ‘비보 프로’를 공개하며, 올해 중반 출시를 예고했는데, 업계에선 애플 제품 대비 훨씬 저렴하게 출시될 것으로 보고 있다. 샤오미도 중국 AR·VR 기기 제조사인 고어텍과 협력해 AI 안경 출시를 준비 중이다. 이 역시 높은 가격 경쟁력을 강점으로 내세울 전망이다.
◇로봇도 中 가성비 제품과 경쟁 예고
로봇에서도 중국은 초가성비 전략으로 글로벌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로봇 청소기에선 지난해 출하량 기준 50% 이상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스마트폰 제조사인 샤오미도 이미 로봇 청소기에서 높은 경쟁력을 입증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버티고 있는 국내 로봇 청소기 시장에서도 샤오미는 높은 품질과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량 선두 자리에 올라 있다.
업계에선 샤오미가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 진입도 앞둔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앞서 지난 2022년 샤오미는 사람의 음성과 감정 식별이 가능한 첫 휴머노이드 로봇 ‘사이버원’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화웨이에서 독립한 중국 스마트폰 브랜드 아너가 최근 자체 로봇 개발 계획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후발주자인 삼성전자, 애플은 각 스마트폰 생태계를 활용한 가정용 로봇을 준비 중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가전제품 제어를 핵심 기능으로 한 AI 로봇 ‘볼리’를 출시할 예정이며, 별도로 국내 이족보행 로봇 전문기업 레인보우로보틱스 인수를 완료해 휴머노이드 AI 로봇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애플도 이르면 내년 출시를 목표로 하는 가정용 로봇을 개발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음성 비서 시리와 애플 인텔리전스가 탑재돼 스마트홈 제어 기능을 수행할 전망이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가정용 로봇은 아직 시장이 열리진 않았지만, 한국 기업들이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며, “중국 기업들도 가성비를 내세운 AI 홈 허브 기반 로봇들을 선보이고 있는데, 중국 소프트웨어를 향한 고객사들의 우려가 여전히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