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민주당 대통령 후보, HMM 부산 이전 공약
건전성 악화 따라 기업금융 기능 마비될 수도···산은, 지분 매각 고민
부산 이전 위해서는 정부 지분 유지해야···대선 결과 따라 매각 양상 원점 재검토
부산 이전 완료 후에도 국적 선사 영향력 지속 유지 가능성···민영화 작업 차질 불가피
[시사저널e=김태영 기자]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대선 공약으로 HMM 부산 이전을 제시하면서 지분 매각 여부를 두고 한국산업은행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HMM 이전을 위해서는 사실상 정부 지분이 유지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매각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대선 결과에 따라 매각 양상도 원점에서 재검토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부산을 찾아 해양수산부와 HMM을 부산으로 옮기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가장 큰 해운회사인 HMM를 부산으로 옮겨오도록 하겠다"며 "물론 민간회사라서 쉽지는 않지만 정부 출자 지분이 있기 때문에 마음먹으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HMM 직원들도 부산 이전에 동의했다고 부연했다.
현재 HMM은 한국산업은행이 36.02%, 한국해양진흥공사가 35.67%의 지분을 보유 중이다. 국민연금과 한국수출입은행 지분까지 합하면 정부 측 지분은 80%에 달해 이 후보 공언대로 본사 이전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지분 구조를 보면) 정부가 추진하면 (HMM 본점을 부산으로 하는은) 어려움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문제는 HMM이 지분 매각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HMM의 전신인 현대상선은 2016년 경영상 어려움을 겪으며 채무 불이행 위기에 처하자 한국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출자전환에 나섰다. 이어 2018년 설립된 한국해양진흥공사 등이 지분을 인수하면서 공동관리에 들어갔다. 이후 수 차례 매각 시도가 있었으나 무산되면서 한국산업은행은 추가적으로 자금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한국산업은행의 건전성을 위협하는 상황이 됐다. 현재 한국산업은행의 BIS 자기자본비율은 13.9%로 국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평균인 17.1% 대비 낮은 수준이다. BIS 자기자본비율은 은행의 자기자본을 위험가중자산으로 나눈 것으로 은행의 건전성을 나타내는 핵심 지표다.
특히 HMM 주가 상승은 한국산업은행의 BIS 자기자본비율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꼽혀 왔다. BIS 규정상 은행이 자기자본 대비 특정 기업 지분을 15% 이상 보유하면 15%가 넘는 지분에는 위험가중치 1250%가 매겨진다. HMM 지분 36.02%를 보유하는 한국산업은행은 HMM 주가가 1만8600원대를 넘어가면 이 가중치가 적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HMM 주가가 2만5000원을 넘으면 현재 13.9%인 한국산업은행의 BIS 자기자본비율이 금융당국의 권고치인 13%를 밑돌 가능성이 커진다. BIS 비율이 하락할수록 조달 금리가 높아져 대출 여력이 줄어든다. 13% 밑으로 떨어지면 ‘위험가중자산’으로 분류되는 기업 대출이 마비되는 등 정책금융에 나서기 어려워진다.
상황이 이렇게 악화되자 강석훈 한국산업은행 회장은 지분 매각을 고민하고 있다. 앞서 지난달 24일(현지시간) 강석훈 한국산업은행 회장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산업은행의 건전성을 지키기 위해 HMM 지분 매각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HMM 부산 이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지분 매각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건전성 개선 조치와는 별개로 부산 이전을 위해서는 정부 지분이 현재처럼 유지돼야 하기 때문이다. 강 회장 임기도 변수다. 강 회장 임기는 다음달 6일까지다.
그러나 BIS 자기자본비율 하락은 곧 한국산업은행 본연의 역할인 기업금융 기능의 약화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한국산업은행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대선 결과에 따라 HMM 매각 여부나 방식이 원점에서 재검토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유력 대권 주자인 이 후보가 당선된다면 지분은 본사 이전까지는 당분간 유지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여기에 해양 국가 공약을 내세운 이 후보의 경우 부산 이전을 완료했다고 해도 매각을 하기 보다 국적 선사에 대한 영향력을 지속 유지하려고 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 정부에서는 HMM을 팔고 싶어했지만 새 정부에서는 굳이 팔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있다"며 "단순 본사 이전에만 그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처음부터 정부의 입김이 반영되면 현재 진행 중인 민영화 작업에는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