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대적 조직 개편·수율개선 총력
D램 점유율 2위로 밀려나

전영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DS부문장) / 사진=삼성전자,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전영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DS부문장) / 사진=삼성전자,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시사저널e=고명훈 기자]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반도체 사업을 이끈지 21일로 1년이 됐다. ‘구원투수’로 투입된 전 부회장은 시스템 전환과 위기 돌파를 위해 조직 안팎의 쇄신을 주도해왔다. 그러나 인공지능(AI) 시대의 핵심으로 주목받는 차세대 메모리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 뚜렷한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경쟁사와의 기술격차 해소, 품질 안정화 등 해결해야 할 과제는 여전하다. 

고대역폭메모리(HBM)는 주요 거래선인 엔비디아의 품질 인증이 지연되고 있으며 미국의 대중 수출 통제 여파까지 겹쳐 회복세에 들어서지 못했다. 삼성전자는 30여년간 지켜온 D램 시장 1위 자리를 SK하이닉스에 내줬고 주가는 5만원대에서 맴돈다.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조직문화에서 기존 틀을 깰 정도의 큰 변화가 일고 있단 평가도 나온다. 대대적인 조직개편과 인사를 단행했고 이례적인 사과문까지 발표하며 주주 소통도 강화했다. 다만 상황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 실적 부진에 직접 사과문···‘위기의 1년’

전 부회장은 지난해 5월 21일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으로 공식 취임했다. 메모리 반도체와 배터리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이끌어낸 인물로 삼성의 반도체 위기를 정면 돌파할 인물로 낙점됐다. 그러나 DS 부문이 안고 있던 구조적 난제는 만만치 않았다. 

삼성전자 DS부문은 2024년 2분기 실적 개선을 끝으로 이후 1년간 지속적인 부진에 시달렸다. 작년 한 해 동안 분기 매출은 조금씩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내리막을 탔다. 지난해 2분기 6조4500억원, 3분기 3조9000억원, 4분기 2조9000억원 등으로 감소했으며 올해 1분기는 전년 대비 42.4%, 전분기 대비 62.1% 감소한 1조1000억원에 머물렀다.

전 부회장은 지난해 3분기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감소하자, 잠정실적 발표와 함께 이례적으로 사과문을 전달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로 근원적인 기술경쟁력과 회사의 앞날에 대해서까지 걱정을 끼쳤다”며 “많은 분께서 삼성의 위기를 말하고 있다. 이 모든 책임은 사업을 이끄는 우리에게 있다”고 머리를 숙였다.

주가도 크게 떨어졌다. 삼성전자의 주가는 전 부회장의 취임날인 2024년 5월 21일 종가 기준 7만8400원에서 현재는 5만원대 중반에 머물고 있다. 지난 20일 종가는 5만5900원으로 1년 전과 비교해 28% 하락했다. 회사는 작년 11월부터 1년간 10조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정책을 내놓으며 주가 부양에 나섰지만 효과는 일시적이었다.

삼성전자의 HBM3E 12단 /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의 HBM3E 12단 /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 반도체사업의 흔들림은 실적뿐 아니라 시장 지위에서도 드러났다. AI 반도체 수요 급증으로 주목받는 HBM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엔비디아 등 주요 고객사 품질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면서 선두에서 밀려났다. 

올 1분기 D램 시장 점유율에서 1위 자리를 SK하이닉스에 내주기도 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 1분기 매출액 기준 글로벌 D램 시장에서 SK하이닉스는 36% 점유율로 1위에 올랐으며, 삼성전자는 34%의 점유율로 2위로 내려왔다. HBM 대응 지연은 점유율 하락과 직결됐다. 

전 부회장은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주가가 왜 이렇게 부진하냐”는 한 주주의 질문에 “HBM 대응이 주가 부진에 가장 큰 영향을 줬다고 생각한다. AI 반도체 시장에서 초기 대응이 조금 늦어져 주력 사업인 메모리에서 수익성을 가져가기 어려웠다”며 주가 부진 원인으로 HBM을 직접 지목했다.

◇조직개편부터 D램 재설계까지···HBM 정면 돌파

전 부회장이 위기 타개를 위해 가장 먼저 손을 댄 건 조직이다. DS부문장 취임 직후 가장 먼저 한 일도 HBM 개발 전담팀을 핵심으로 한 대대적인 조직개편이었다. 공정 설비 연구조직을 통합하고 분산됐던 HBM 전문 인력을 메모리사업부로 통합했다. 어드밴스드 패키징(AVP) 개발팀과 설비기술연구소도 재편해 DS부문장 직속으로 배치했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 적층하는 구조인 만큼 D램 수율과 품질 확보가 핵심이다. 삼셩전자는 HBM4(6세대)부터 10나노급 6세대(1c) 공정을 조기 도입하는 등 D램 재설계에 나섰다. 웨이퍼 가공 장비 교체도 추진한다. 

전영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DS부문장)이 지난 3월 개최한 정기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사진=삼성전자
전영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DS부문장)이 지난 3월 개최한 정기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사진=삼성전자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전영현 부회장이 이끄는 삼성전자 반도체사업의 목표와 방향은 단순하고 명확하다. 신규 칩 개발로 분위기를 바꾸려 했던 (전 DS부문장) 경계현 사장과 달리, 이미 선두권을 빼앗긴 HBM에서 정면 승부하겠단 전략”이라며 “파운드리 격차를 줄이는 것도 급하지만, 당장 메모리에서 돈을 벌지 못하면 삼성전자는 투자가 어려워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려운 시기엔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먼저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HBM에서 기술 리더십을 되찾아 시장 경쟁력을 강화하고 이를 토대로 다른 영역까지 차츰 키우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 부회장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다. 올해 대표이사로 공식 선임되면서 DS부문장에 더해 메모리사업부장, SAIT(삼성종합기술원) 원장까지 직책이 늘었다. 새로운 메모리사업부장이 전면에서 전 부회장을 지원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이마저도 그가 겸직하며 현장 지휘까지 맡았다.

반도체업계에서 여전히 삼성전자가 HBM 시장에서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했단 관측이 나온다. 특히, 지난해말 미국이 발표한 중국 HBM 수출 통제로 생산물량 확대에도 제약이 있는 상황이다.

전 부회장은 “다음 시장인 HBM4는 커스텀(맞춤형) 제품인데, 작년 HBM3(4세대)와 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차질 없이 계획대로 개발을 진행 중이고 양산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술 리더십 부족으로 주가가 부진하는 모습을 보여드리지 않기 위해 내부 역량을 지속 강화해서 주주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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